■ 약천 남구만선생 묘
♣ 시대 : 조선 숙종37년(1711)
♣지정번호 : 향토유적 제5호
♣ 지정년월일 : 1990.11.22
♣ 소재지 : 용인시 모현면 초부리 산1-5
♣ 소유자 : 남표희(南杓熙)
♣ 규모 : 비높이 90㎝, 폭 67㎝, 두께 35㎝ 재료 : 토분 및 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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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구만(南九萬)의 묘소는 본래 양주(楊州)의 불암산 화접동(花蝶洞)에 초장(初葬)되었다가 뒤에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초부리 산1-5(하부곡 마을)에서 이장(移葬)한 것이다. 당시의 봉분은 원형이었으나,1970년대 후반 후손들이 묘역을 확장하면서 방형(方形)의 지대석(地臺石) 기단을 둘러 봉토했다.
정경부인(貞敬夫人) 동래 정씨(東萊鄭氏)와 합장한 묘소앞에는 본래의 석물인 묘표와 망주석, 향로석 등이 배역되었다. 장명등·상석·혼유석 등은 새로 설치한 것이다. 묘표 에는 음기(陰記)가 없으며, 비신(碑身)이 방형의 대석(臺石)위에 세워져 있다.
대석 정면에는 10판의 운문판(雲紋板)이 새겨져 있으며, 하단 각면에는 6판의 당초 문판이, 중앙과 각 모퉁이에는 동자주(童子柱)가 새겨져 있다. 가첨석 상단에는 좌우로 해태를 조각했고, 첨두에는 각각 해태의 안면(顔面)을 두었다.
비는 높이 90㎝, 폭 67㎝, 두께 35㎝의 규모이다. 묘소 입구 도로변에는 1991년에 건립한 신도비가 있다. 남구만(1629-1711)은 조선 현종·숙종 때의 문신으로, 자는 운로(雲路), 호는 약천(藥泉)·미재(美齋), 본관은 의령(宜寧) 이다. 송준길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효종2년(1621) 사마시를 거쳐 별시문과 에 급제한 뒤, 여러 벼슬을 역임하고 영의정까지 올랐다. 그는 재임 기간중 서인(西人)과 소론(少論)의 영수로서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 갑술옥사(甲戌 獄事)을 거치며 부침(浮沈)을 거듭하다가 숙종 33년(1707) 벼슬에서 물러나 봉조하(奉祖賀)되었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그는 문사(文詞), 서화(書畵) 에도 뛰어났다.
시조『동창이 밝았느냐』가 전하며『약천집(藥泉集)』이 있다. 글씨로는 좌상남지비(左相南智碑)·개심사(開心寺)· 양화루(楊花樓)·영송루(迎 送樓)등의 액자(額字)를 남겼다.
영의정 약천 남구만 선생 묘 원경 / 사진 ⓒ사또(sato721)
▲우측이 약천 남구만 묘이고 좌측에 보이는 규모가 작은 묘가 남구만의 장손자 님극관 부부 합장 묘이다.
소재지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초부리 산1~4(하부곡 마을)
↑약천 남구만선생묘(정경부인 동래정씨 합장)
↑약천 남구만선생 묘비
↑약천 남구만선생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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