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중국사(中國史)

관우(關羽)

야촌(1) 2012. 7. 22. 20:32

■ 관우(關羽, ? ~ 219

 

중국 삼국시대 촉(蜀)나라의무장(武將)으로 지금의 산시성[山西省] 윈청현[運城縣]인 하동군 해현(河東郡解縣)에서 출생하였다. 자는 운장(雲長)이며 후한말(後漢末)의 동란기에 탁현(褶縣:河北省 소재)에서 유비(劉備)를 만나, 장비(張飛)와 함께 의형제를 맺고, 평생 그 의를 저버리지 않았다.

 

200년에 유비가 조조(曹操)에게 패하였을 때, 관우는 사로잡혀 조조의 귀순 종용과 함께 예우를 극진히 받았다. 이에 관우는 조조의 대적(大敵) 원소(袁紹)의 부하 안양(顔良)을 베어 조조의 후대에 보답한 다음, 기어이 유비에게로 돌아갔다.

 

208년 적벽전(赤壁戰) 때에는 수군(水軍)을 인솔하여 큰 공을 세우고, 유비의 익주(益州: 四川省) 공략 때는 형주(荊州: 湖北省)에 머물러, 촉(蜀)나라의 동방방위를 맡는 등 그 무력과 위풍(威風)은 조조와 손권(孫權)마저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형주에서 촉나라 세력의 확립을 위하여 진력하다가 조조(曹操)와 손권[孫權, 181~251]의 협격(挾擊)을 받아, 마침내사로잡혀 죽음을 당하였다.

 

관우는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 충신(忠臣)의 전형(典型)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송나라때 이후로 관제묘(關帝廟)를 세워 그를 무신(武神) 또는 재신(財神)으로 모시는 등 중국 민중의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17세기에 관우 숭배는 조선으로 전해져 관우가 일본의 침략에서 나라를 구해주리라고 믿는 민간신앙이 되었다.

 

▲관우(關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