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선현들의 묘.

민정중선생 묘(閔鼎重先生 墓)

야촌(1) 2012. 4. 4. 18:43

■ 민정중(閔鼎重)

    [문과] 인조(仁祖) 27년(1649) 기축(己丑) 정시(庭試) 갑과(甲科) 1[장원(壯元)]위(1/7)

    [진사시] 인조(仁祖) 26년(1648) 무자(戊子) 식년시(式年試) 식년진사 3등(三等) 1위(3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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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중[1628(인조 6)~1692(숙종 18)]은 숙종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여흥, 자는 대수(大受), 호는 노봉(老峰)이다. 

강원도관찰사를 지낸 민광훈(閔光勳, 1595~1659)의 아들이며 숙종(肅宗)의 계비(繼妃)인 인현왕후(仁顯王后)의 백부(伯父)이자 이조판서를 역임한 눌옹(訥翁) 이광정(李光庭, 1552~1627)의 외손(外孫)이다. 

 

1649년(인조 27) 정시문과(庭試文科)에 장원급제하여 전적(典籍)과 정언(正言) 등을 지냈으며 이후 대사간(大司諫)을 거쳐 각조의 판서를 역임하였다. 1675년(숙종 1) 남인(南人)이 집권하자 장흥부(長興府)에 유배되었다가 1680년(숙종 6)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으로 서인(西人)이 재집권하자 좌의정에 임명되어 중앙 정계에 화려하게 복귀하였다.

 

서인의 중심인물로 크게 활약하였으나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다시 서인이 남인에게 축출되자 벽동(碧潼)에 안치(安置)되었다가 죽었다. 사후 복관(復官)되어 효종(孝宗)의 묘정(廟廷)에 배향되었으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민정중선생 묘(閔鼎重先生墓)   

 

□ 소재지 : 여주읍 하거리 산21-8.  

□ 시 대 : 조선  

□ 지정사항 : 향토유적 제4호 

 

선생의 묘는 본래 경기도 양주에 있었으나 후에 현 위치로 이장하고 부인 평산신씨, 남양홍씨와 합장되었다. 

봉분 둘레에 네모난 방형으로 호석을 둘렀고 봉분 앞에는 상석· 향로석· 비석을 갖추었으며 양 옆으로 망주석과 문인석을 세웠다. 

 

좌측에 옥개를 얹은 신도비는 경종 원년(1621년 3월)에 세운 것이다.

신도비는 묘역과 약 50m 떨어진 입구에 있다.

 

이 신도비는 네모난 방형비대석 전면에 연화문(蓮花紋)을 조각하였고 윗면에는 복련을 조각하여 비신을 받치고 있다. 이 신도비에는 「의정부좌의정 증시문충민공신도비명(議政府左議政 贈諡文忠閔公 神道碑銘)」이라 적혀있고, 팔작지붕형 옥개가 얹혀져 있다.

 

 

좌의정 민정중 선생 묘. / 소재지 : 경기도 여주군 여주읍 상거리 산21~8

 

좌의정 민정중 선생 묘갈비

 

 좌의정 민정중 신도비 /사진>수암풍수지리

 

↑민정중선생의 글씨, “근묵?에서, 성균관대학교 도서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