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선조유적. 유물

호암공 이반기선생 묘-영암 입향조

야촌(1) 2011. 9. 15. 19:35

▲망호리 咸井洞의 선산을 지키는 옛 신서당을 재건한 모습.

 

▲26世 호암공 이반기선생 묘(湖巖公 李磻琦先生 墓)

 

○호암 이반기(湖巖 李磻琦)

   생졸년 : 1510년(중종 5)-1597년(선조 30)

 

자(字)는 치신(致信), 호(號)는 호암(湖巖), 관은 경주(慶州)이다. 아버지의 휘(諱)는 욱(頊)으로 은덕(隱德)이 있었고,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 범(範)의 딸이다.  공은 중종(中宗) 경오(1510년)에 태어났고. 타고난 성품이 뛰어나 8세(歲)에 아버지를 여의였으나 슬퍼함이 어른과 같았다.

 

종조(從祖) 눌헌(訥軒)선생께서 수업(修業)하여 깊이 성리학(性理學)을 연구하고 종숙(從叔) 송음공(松陰公 : 珀)과 더불어 강학(講學)하기를 쉬지 않았다. 당대의 동료들로서 따라갈 사람이 없었으며 기절(氣節)이 탁이(卓異)하여 무과(武科)출신으로 명종(明宗) 때에 특별히 추천되어 벼슬이 선전관(宣傳官)이었다.

 

을사사화(乙巳士禍)때에 남의 배척을 받아 고양(高陽 : 오늘날 고양시)으로 부터 난리를 피하여 남쪽으로 내려왔는데, 세 곳이나 거쳐서 영암(靈巖)의 녹문산(鹿門山 : 영암읍 회문리 녹암) 가운데에 임시로 살면서 거문고와 서책으로 자오(自娛)하였다고 전한다. 

 

그후 선조(宣祖) 정유(1597년)년 11월 17일에 돌아가시니 향년 88세(歲)였다. 망호정(望湖亭) 뒷산 함정동(咸井洞)선의 방향을 등진 언덕에 장사(葬事)지냈다, 초배(初配)는 숙부인(淑夫人) 당악김씨(棠岳金氏) 모(某)의 딸이며 묘소는 공의 묘소 백호등(白虎嶝)에 있으며, 재취(再娶)는 숙부인(淑夫人) 양천허씨(陽川許氏)로 응서(應瑞)의 딸로 묘(墓)는 공의 묘소와 쌍폄(雙窆=쌍분)이다. 

 

두 아들을 낳았으니 큰 아들은 인수(仁壽), 둘째는 인걸(仁傑)이니 호(號)는 월재(月齋)로 바로 첨정공(僉正公)이다.

선무원종훈(宣武原從勳)에 록(錄)되고 병조참판(兵曹參判)에 증직(贈職)되었다.

 

 

▲호암공(湖岩公)의 현손(玄孫)이요. 29世 병조참판(贈嘉善大夫兵曹參判) 망호공(望湖公) 이주남(李柱南)의

     5자중 2남 선전(宣傳公) 정필(廷弼)의 부부 합장묘이다. 이 산소는 호암공 묘소 아래의 옆에 소재한다.  

 

○ 이정필(李廷弼)    

      경진(庚辰) 1640년생으로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자운(子雲)이다.

 

[무과] 현종(顯宗) 13년(1672) 임자(壬子) 별시(別試) 병과(丙科) 443위/합격연령: 33歲

 

[이력사항]

전력: 부사과(副司果) ㅣ 부모구존: 구경하(具慶下: 부모가 모두 살아있음)

 

[가족사항] 

아버지 : 이주남(李柱男)

아버지의 품계 : 병절교위(秉節校尉)

아버지의 관직 : 용양위부사과(龍驤衛副司果)                

형 : 이정량(李廷亮)

동생 : 이정빈(李廷彬). 이정찬(李廷讚)

 

[거주지] 영암(靈巖)

위의 묘갈명(墓碣銘)은 己未年(1919) 9월 하순  장흥(長興) 고광선(高光善)이 지었다.

 

 

▲병조참판(贈嘉善大夫兵曹參判) 29世 망호공(望湖公) 이주남(李柱南)의 장남 남계공((南溪公) 정량(廷亮)의

     부부 합장 묘로 암공 묘의 바로 아래에 있다.

 

○ 이정량(李廷亮)    

     정축(丁丑) 1637년생으로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자현(子賢)이다.

 

[무과] 현종(顯宗) 13년(1672) 임자(壬子) 별시(別試) 병과(丙科) 109위/합격연령: 36세

 

[이력사항]

전력 : 보인(保人) 

부모구존 : 구경하(具慶下)

 

[가족사항]

아버지 : 이주남(李柱男)                

아버지의 품계 : 병절교위(秉節校尉)                  

아버지의 관직 :  용양위부사과(龍驤衛副司果)                

제(과거당시) : 이정필(李廷弼). 이정빈(李廷彬). 이정찬(李廷讚)

 

[거주지] 영암(靈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