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조선시대 인물

최국선(崔國璿)

야촌(1) 2011. 5. 28. 02:31

■ 최국선(崔國璿)

   ◇경주 최부자집의 기원을 이룬 분임.

   ◇생몰년 : 1631년(인조 9)~1682년(숙종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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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문신· 자선사업가(慈善事業家). 자는 재경(在卿)이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증조(曾祖)는 증 병부좌시랑(贈 兵部左侍郞-오늘날 국방차관급) 최신보(崔臣輔)이고, 조부는 공조참판(工曹參判) 정무공(貞武公) 최진립(崔震立)이다. 

 

아버지 용궁현감(龍宮縣監-從六品) 최동량(崔東亮)과 어머니 승사랑(承仕郞-從八品) 주관(朱灌)의 딸 웅천주씨(熊川朱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타고난 성품이 엄하고 기량이 굳세어 동년배들도 모두 공경하면서도 꺼렸다.

 

집안이 청렴하고 결백하였고, 어려서 부친을 잃고 모친을 모시면서 제대로 봉양할 수 없자, 힘든 일과 농사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농업이 어느 정도 성과가 이루어지자 더 이상 재산을 늘리는 데 힘쓰지 않고, 남은 것을 가지고 친척과 마을 사람들을 구휼하였다.


1671년(현종 12) 대기근이 들자 수백 석의 곡식을 내어 죽을 쑤어 굶주린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으며, 옷감을 추위에 떠는 자들에게 주었다. 사방에서 떠돌아다니는 자들이 몰려들었지만 그 수를 따지지 않고 구휼하였다.


1672년(현종 13) 관찰사가 충신의 자손으로 드러난 행의가 있다고 천거하여 사옹원참봉(司甕院參奉-조선시대 임금의 식사와 대궐 안의 식사 공급에 관한 일을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관청의 從九品의 문관)에 제수되었으나 사은숙배(謝恩肅拜 : 임금의 은혜에 감사하며 공손하고 경건하게 절을 올리던 일)하고 얼마 안 되어 모친의 연로함을 이유로 사직하고 돌아왔다. 동네를 돌아다니며 마을 사람들에게 크고 작은 급박한 일이 있으면 돈을 빌려주고 받은 어음이 상자에 가득하였다.


1682년(숙종 8) 임종에 즈음하여 그동안 돈을 빌려주고 받은 어음은 갚기를 바라고 준 것이 아니니, 불태워 버리라는 유언을 남겼다.묘는 황해도 장연군(長淵郡) 해안면(海安面)에 있다. 

 

[참고문헌]

눌은집(訥隱集)/1808년에 간행된 조선 후기의 문신 이광정(李光庭, 原州人, 1674~1756)의 시문집으로 목판본 22권 11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