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질의답변

경주이씨 대동행렬자 적용유례

야촌(1) 2011. 4. 17. 01:54

■ 경주이씨 대동행렬 자 적용유례

  (慶州李氏 大同行列 字 適用類例)

 

 경주이씨(慶州李氏) 금석록(金石錄)을 보면, 경주이씨 화수회가 발족한 것은 1868년(고종 5년)으로, 지금으로 부터 143년 전이 되고, 이는 고종(高宗) 초기 대원군께서 섭정하고 계실 때 전국에 왕명(王命)으로 모던 성씨들은 각기 항렬자(行列字)를 정하고 이에 따라, 이름을 작명하되 장파(長派)의 항렬자를 따라 통일하여, 성명만 보더라도 그 관향과 항렬을 단번에 알아보고, 서로 돈목(敦睦)하고 위 아래 차서(次序)를 혼동(混同)해서, 망발(妄發)하는 일이 없게 하라고 명했다.

 

이에 오문(吾門)에서는 영의정(領議政)을 지낸 귤산(橘山) 유원(裕元) 공의 제청으로 상서공파(尙書公派)에서, 유원(裕元), 유승(裕承), 유응(裕膺), 국당공파(菊堂公派)에서 교영(喬榮), 규창(圭昌), 익재공파(益齋公派)에서 규정(圭正), 규선(圭善), 규철(圭哲), 용우(龍雨) 등 구(九)인이 모여, 처음으로 경주이씨 화수회(慶州李氏花樹會)를 창립하고 항렬(行列)도 정(定)하였다.

 

당시 장파(長派)인[원래 장파는 평리공파(平理公派)이나, 당시 불참] 익재공파(益齋公派)가 주류를 이루는 오촌공파(梧村公派)  세거지인 진천 연촌에 모여서 화수회(花樹會)를 창립하고 항렬(行列)도 정하였는데 때는 가을 이었다 당시 항렬자를 정함에 있어, 진천(鎭川)의 오촌공파문중(梧村公派門中)에서 정하여 준용하고 있는, 항렬자(行列字)를 따라서 작명키로 의정(議定)하고, 당시 미정(未定)이었던 우(雨)자 이하의 5대 항렬자를 새로 정하였다.

 

그리고 이곳 장파(長派)인 익재공파(益齋公派)가 세거하는 이곳 진천연촌(鎭川蓮村=오늘날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양촌리)에 10여 칸의 집을 짓고 경주이씨 화수실(慶州李氏花樹會室)이라는 편액(扁額)을 걸은 후, 화수회 장소로 정했던 것이다.

 

편액(扁額)은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께서 직접 쓰서 하사 했다. 그럼으로, 경주이씨 화수회(慶州李氏花樹會)란 명칭은 문헌상 초려선생의 화수 계 등이 있으나, 대동문중(大同門中)에 적용되는 문헌은 이때 부터 보이기 시작한 것임으로, 이 때를 기원으로 보는 것이 옳을 듯 하다.

 

●경주이씨 문중별 행열 자 사용시기 (慶州李氏 門中別 行列 字 使用時記) 오문의 족보(族譜)나 문집(文集) 등의 자료를

   고정해 보면 각파의 행렬자 적용은 아래와  같다.

 

第一派 익재공파에서는 24世 재사당 휘 원(黿)자부터 시작하여 34世 집(集)자 까지 행렬자(行列字)를 표시했으며,

 

第二派 국당공파에서는 8정집 27세(世) 지퇴당(知退堂) 정형(廷馨) 부터 시작하여 현(顯)자 까지 표시했고.

 

第三派 국당공파 정순공(靖順公) 성중(誠中) 문중에서는 21세 오(塢)에서 시작하여 용(容)자 까지 표시했고

 

第四派 상서공파(尙書公派)에서는 22세 성무(成茂)에서 시작하여 유(裕)까지 표시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