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조선시대 인물

한백겸(韓百謙)

야촌(1) 2010. 12. 30. 18:31

■ 한백겸(韓百謙)

 

   [생졸년] 1552년(명종 7)∼1615년(광해군 7).

   [생원진사시] 선조(宣祖) 12년(1579) 기묘(己卯) 식년시(式年試) 생원 3등(三等) 1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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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청주(淸州). 자(字)는 명길(鳴吉), 호(號)는 구암(久菴). 아버지는 판관(判官:從五品) 효윤(孝胤)이며, 어머니는 예빈시정(禮賓寺正 : 正三品) 신건(申健)의 딸이다.  민순(閔純)의 문인이다.

1579년(선조 12) 생원시에 합격하고, 1585년 교정청(校正廳)이 신설되자 정구(鄭逑) 등과 함께 교정낭청에 임명되어 《경서훈해 經書訓解》의 교정을 보았다. 1586년 천거로 중부참봉(中部參奉)이 되었으며, 이어 경기전참봉·선릉참봉에 제수되었으나 재직중 병으로 사퇴하였다.

1589년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사건 때 모반에 실패하여 자살한 정여립의 시신을 거두어 정성스레 염(殮)한 사실이 뒤에 발각되고, 또한 정여립의 생질인 이진길(李震吉)과 친분이 두터웠다는 이유로 연좌되어 장형(杖刑)을 받고 귀양갔다가 임진왜란 때 대사면령으로 석방되었다.

석방될 때 적소에서 적군에게 아부하여 반란을 선동한 자들을 참살한 공로로 관직에 재임용, 내자시직장(內資寺直長)에 기용되었고, 1595년 호조좌랑(戶曹佐郞 : 正六品) , 1601년 형조좌랑(刑曹佐郞 : 正六品)· 청주목사(淸州牧使 : 正三品), 1607년 판결사(判決事 : 正三品)· 호조참의(戶曹參議 : 正三品)에 서용되었다.

이듬해 선조(宣祖)가 죽자 빈전도감당상(殯殿都監堂上)이 되어 상례(喪禮)를 주관하였다.
1610년(광해군 2) 강원도안무사(江原道安撫使), 1611년 파주목사(坡州牧使 : 正三品)에 기용되었다가 사임하고 양주의 물이촌(勿移村)에 퇴거하여 있다가 역학(易學)에 해박하다 하여 선조(宣祖) 때부터 편찬하기 시작하였던 《주역전의 周易傳義》의 교정을 보았다.

실학의 선구자로서 실증적이며 고증학적인 방법으로 조선의 역사·지리를 연구하고, 종래 역사가들의 학설을 비판, 수정하여 이 방면에 새로운 관심을 고양하였으며, 그 결과로 《동국지리지》의 저술과 《기전고 箕田考》 가운데 실려 있는 〈기자도 箕子圖〉·〈기전설 箕田說〉 등의 저술을 남겼다.

이밖에 저서로 《구암집》이 있다. 영의정(領議政 : 正一品)에 추증되었으며, 원주의 칠봉서원(七峰書院)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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