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시일(李時逸)
[세 계] 국당공 후 지퇴당(知退堂) 이정형(李廷馨) 후손
[생졸년] 1731년(영조 7) 10월 15일∼1792년(정조 16) 4월 7일.
[문 과] 영조(英祖) 32년(1756) 병자(丙子)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 8위/26세 입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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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문신. 자는 경안(敬安)이고, 호는 한와(閒窩)이다.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본적은 오늘날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기계면(杞溪面) 출신이다. 증조는 이집(李楫)이고, 조부는 이효겸(李孝謙)이다. 부친 이기배(李基培)와 모친 서행진(徐行進)의 딸 이천서씨(利川徐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손첨걸(孫瞻杰)의 딸 월성손씨(月城孫氏)이다.
어려서는 모친의 가르침을 받았다. 13세에 사서를 통독하고 문장의 뜻을 깨우쳤으며, 장성해서는 종숙(從叔)인 고암(顧庵) 이홍리(李弘离)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756년(영조 32) 식년시 병과 8위로 문과 급제한 후, 1757년(영조 33) 가주서(假注書)로서 장헌세자에게 ‘덕성합복주(德成閤伏奏)’를 올렸다.
1758년(영조 34) 선략장군용양위부사정(宣略將軍龍驤衛副司正)에 제수된 것을 시작으로, 1767년(영조 43)까지 봉정대부(奉正大夫)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 통훈대부(通訓大夫) 예조좌랑(禮曹佐郞) 겸 대여례(兼帶如例) 등을 역임하였다.
1768년(영조 44) 동궁(東宮)의 일로 상소를 올렸다가 외직에 강등되었으나 다시 임용되었다. 1773년(영조 49) 형랑(刑郞)에 임용되었으나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살다가 향년 62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저서로 《한와집(閒窩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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