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선조문집

구충당문집(求忠堂文集) - 30世 이의립(李義立) 著

야촌(1) 2010. 10. 10. 15:58

구충당문집(求忠堂文集)

 

 필자소장본(초간본) - 1910년 간행본

 

 

 

 

 

 

 

 

 

 

● 구충당문집 (求忠堂文集)

 

 ◇표제 : 求忠堂文集(單) - 이의립(李義立) 著/李殷雨(編)

 ◇ 판 종 : 목판본(木版本).

 ◇발행사항 : 刊寫地未詳/刊寫者未詳

 ◇간행년도 : 1910년(倭政 1)

 ◇형태사항 : 2卷 1冊 > 四周雙逸. 半郭. 20.5Cm x 16.5cm. 10行 20字 . 註雙行. 內向2葉花紋魚尾 : 28.8Cm x 20.2Cm.

 ◇ 주기사항 : 서(序) > 庚戌(1910년)-----김도화(金道和)

                          발(跋) : 庚戌(1910년)-----이은우(李殷雨)

 

● 해재

 

이의립(李義立) 선생이 돌아가시고 216년이 지난 뒤에 후손 이회경(李晦慶 : 1784-1866)과 이은우(李殷雨)가 남아있던 李義立의 詩文을 모아 문집을 간행하였다. 권두에는 김도화(金道和 :1825-1912)가 쓴 서문(序文)과 년보(年譜)· 철산도(鐵山圖)가 있으며‚ 卷之一에는 시(詩) 18수· 사비문(賜牌文)· 편지글 6편과 기타 4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卷之二에는 잡저(雜著) 5편· 제문(祭文) 6편· 시(詩) 10수· 통문(通文) 2편과  행장(行狀)· 묘지명(墓誌銘) ·묘갈명(墓碣銘)· 발문(跋文) 3편 등이 실려 있다.

 

卷之一의 시 가운데 지상관어조유감치령제도후영탄망부석(池上觀魚鳥有感·鵄嶺齊禱後詠歎望夫石) 2수에는 시의 내용을 설명하는 서문이 붙어 있는데‚ 특히 치령제도후영탄망부석(鵄嶺齊禱後詠歎望夫石)은 신라의 충신 박제상(朴堤上)과 부인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은 것이 주목된다.

 

아울러卷之二의 시 10수는 이익정(李益鼎)· 이진택(李鎭宅 : 1738-1805)· 남경의(南景羲 :1748-1812)· 남장만(南丈萬)· 한문건(韓文健)· 최종겸(崔宗謙)· 최달겸(崔達兼)· 손승구(孫升九)· 최기수(崔錤壽)· 이연필(李淵馝) 등이 ≪求忠堂文集≫의 완성을 기리며 지은 시(詩)를 수록한 것이고‚ 잡저(雜著) 6편의 글은 이의립(李義立)선생이 고향으로 물러난 이후, 후손을 경계하기 위해 지은 글로서‚ 삼강오륜을 설명한 내용이다.

 

그리고 제문(祭文) 가운데 제선고부군동추공묘문(祭先考府君同樞公墓文)을 제외한 나머지 5편의 祭文은 유황(硫黃)· 수철(水鐵)· 비상(砒礵)의 삼보(三寶)를 찾는 과정에서 신령의 도움을 청한 글들인데‚ 양란(兩亂 :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복수설치를 위해 노력하던 당시 지식인들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자료이다. 

 

오늘날 규장각(奎章閣)에 소장되어 있는 구충당문집(求忠堂文集) 판본은 소화(昭和 )4년(1929년) 1월의 필사본이다.

 

● 저자소개

 

30世 이의립[李義立 : 1621년(광해군 13)~1694년(숙종 20)]

공(公)의 자(字)는 예겸(禮兼), 구충당(求忠堂)은 그의 사호(賜號-임금이 내린 호)로 경주이씨(慶州李氏) 19世 교감공(校勘公) 존사(存斯)의 후손으로 선조대의 문신관란(觀蘭 ) 이승증(李承曾)의 5대손이다.

 

1621년(광해군 13) 경주(慶州)에서 태어난 이의립(李義立)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10세가 되던 1630년(인조 8) 어머니가 죽은 후 지극한 정성으로 아버지를 봉양하여‚ 아버지가 병이 들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아버지의 병을 치료하려고 하였다.

 

1641년(인조19)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3년상을 마친 후에는‚ 부모가 이미 세상을 떠났으니 비록 효도를 다하고자 하나 그 대상이 없음을 안타깝게 여기고‚ 부모를 섬기는 마음으로 임금을 위해 충성을 다하기로 다짐하였다.

 

그리고 당시 양란(兩亂: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피폐된 나라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국방과 농업을 부흥시켜야 함을 간파하고‚ 화약의 재료인 유황(硫黃)과 농기구의 재료인 철을 구하는 것으로 자신의 소임을 삼았다.

 

이의립(李義立)은 양란(兩亂)의 패인을 화약무기가 없었기 때문이라 간주하였는데‚ 양란(兩亂)의 치욕을 씻고 국방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화약의 원료인 유황(硫黃)을 구하는 것이 급무라 생각하였고‚ 농기구와 생필품의 재료인 철을 구하는 것이 민생의 안정을 위해 무엇보다 긴요한 일이라 생각하였다.

 

당시 조선에서는 유황(硫黃)과 수철(水鐵)이 생산되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일본으로부터 밀무역을 통하여 수입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李義立은 그 과정에서 생기는 많은 폐단과 곤란함을 안타깝게 여기고‚ 천하의 땅은 모두 같으니 조선에도 반드시 硫黃과 水鐵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그것을 찾으러 길을 떠났다.

 

1646년(인조 24) 신라의 충신 박제상(朴堤上)의 신화가 깃든 치술령(鵄鶐嶺)에 움막을 짓고 산신에게 100여일 동안 기도한 뒤‚ 10년 동안 가야산(伽倻山)· 금강산(金剛山)· 묘향산(妙香山)· 구월산(九月山)· 백두산(白頭山)· 속리산(俗離山)· 지리산(智異山)· 태백산(太白山)· 소백산(小白山)· 청량산(淸凉山) 등 이름난 산들을 비롯하여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그러던 중 1657년(효종 8) 꿈에 나타난 산신령의 계시로 울주(蔚州) 달천산(達川山)에서 수철(水鐵)과 비상(砒礵)을 얻게 되었으며‚ 1659년(효종 10)에는 가공법인 상철고취지법(礵鐵鼓吹之法)을 발견하였다.

 

이를 토대로 1660년(현종 1)에 각궁(角弓)· 함석(咸錫)·연철(鉛鐵)· 세면포(細綿布)· 철환(鐵丸)· 부정(釜鼎) 등을 제조하여 훈련도감(訓鍊都監)에 바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임명되었고‚ 1661년(현종 2)에는 북관(北關)의 곡식을 좌병영(左兵營)으로 옮겨 기근에 대비하도록 하였다.

 

1663(현종 4)에 다시 유람에 나서 1669년(현종 10) 경주(慶州) 반호동(盤戶洞)에서 유황(硫黃)을 구하고‚ 1671년에는(현종 12) 유황자조법(硫黃煮調法)을 알아내었다. 이듬해 이를 비변사(備邊司)에 올리니 현종(顯宗 : 1641년~1674년)이 직접 그를 불러 유황(硫黃)· 수철(水鐵)· 비상(砒礵)의 삼보(三寶)를 구하게 되기까지의 전말을 물어보고‚ 갖옷(짐승의 털가죽으로 안을 댄 옷)과 곡식‚ 수철산(水鐵山)과 자황군(煮黃軍) 180명을 하사하였다.

 

그 공로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오르고 숙천도호부사(肅川都護府使)에 임명되었지만 사양하여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그리고 고향인 경주(慶州)로 돌아와 구충당(求忠堂)을 짓고 저술에 전념하다가‚ 1694년(숙종 20)에 74세로 세상을 떠났다.

 

저자 사후 216년인 1910년 <구충당문집> 목판본이 단책(2권 1책)으로 간행됐고. 2000년 12월 국역<구충당 문집>(구충당문집발행위원회, 이기형 국역)이 다시 간행됐다.

 

국역 구충당문집 서지정보-글밭 출판사

 

서명 (국역) 구충당문집(求忠堂文集)
원서명 求忠堂先生文集
/편자 이의립(李義立, 1621 ~ 1694)
저작시기 17세기
분류사항 집부(集部) 별집류(別集類)
번역대본  
원문판수 63
x 20×20
역자 아가형 (李琪炯)
교열  
윤문  
해제작성 조철제 (趙喆濟)
색인/탈초작성  
번역주관기관 경주이씨교감공파구충당후손종친회
발행지 경주
발행처 慶州李氏 校勘公派 求忠堂後孫宗親會
발행년도 2000
초판발행년도 2000
형태사항 331p. : 27
ISBN  
총서사항  
번역형태 완역
원문수록방식 권말 영인 수록
판형 4×6배판(257×188)
번역문형태 한자병기
번역서본문() 125
원문() 128
주석() 179
기타 삽화, 조선왕조실록, 동경통지, 고도 경주 외 수록

 

해제

발행 및 형태 경주 : 慶州李氏校勘公派 求忠堂後孫宗親會, 2000/ 1
저자정보 李義立(1621~1694)
역자정보 李琪炯

 

저자 李義立은 병자호란으로 대표되는 國難의 시기에 생장하여 軍事에 종사할 것을 생각하였으며, 특히 武器에 관심이 많았다. 양친이 돌아가신 후 오로지 鐵鑛을 찾고, 硫黃을 제조하는 법을 익혀 銃砲火藥의 국내 自給을 도모하였는데, 팔도를 헤매며 갖은 고생을 겪은 끝에 뜻을 이루어 당시에 목화를 가져온 文益漸에 비견된 매우 특이한 인물이다.

 

저자의 堂號求忠堂도 임금이 하사한 것이라 한다. 따라서 이 문집에 실린 글들은 여느 사대부의 문집에 실린 글들과는 그 내용이 상당히 다르다. 책 앞쪽에는 저자와 관련된 여러 문서와 문집, 묘소 등의 사진이 실려 있고, 權五燦의 국역본 , 金道和가 있다.

 

책 뒤에는 원문이 영인되어 있는데, 국역의 대본이 된 문집은 20세기 초에 간행된 것이다. 모두 2권으로 구성된 문집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에는 저자의 年譜와 저자가 찾아낸 무쇠 광산의 형세를 그린 鐵山圖가 있다.

 

그 다음에는 , , 雜著가 차례로 나오는데, 철광을 찾고 硫黃砒霜의 제조법을 연구하는 일들과 관련 깊은 것들이 많다. 특히 잡저의 , 유황, 비상을 처음으로 제조한 일기(三寶創造日記)는 이 책의 정신이 깃든 곳이다.

 

2에는 역시 잡저와 祭文이 있다. 여기 실린 잡저들은 권1과는 달리 유교적 윤리에 대한 것이 많다.

제문은 모두 6수인데, 그 중에서 4수는 유황의 발견을 축원하는 글이고, 1수는 軍器의 무사한 운송을 기원하는 글이며, 祭先考府君東樞公墓文은 자신의 행적이 나라를 편안케 하고 백성을 이롭게 하라. 安國利民는 집안의 가르침에 부끄럽지 않았음을 선친께 보고한 글이다.

 

부록으로 문집의 간행을 축하하며 지은 시들과 通文, 李鎭宅이 지은 行狀, 柳榮魯가 지은 墓誌銘, 崔鉉弼이 지은 墓碣銘, 崔柱崑, 李晦慶, 李殷雨가 각각 지은 이 실려 있다. 또 원 문집에는 없는 趙喆濟解題가 새로이 들어갔다.이현일(李炫壹)

 

목차보기

    국역(國譯) 구충당선생문집(求忠堂先生文集) ()

 

서문

1

◈《연보(年譜)

◈《철산도(鐵山圖)

◈《()

    ― 서울에서 남쪽 집에 돌아와 읊다[自京南歸吟 二首]2

   ― 한가한 날 구충당에서 임금을 생각하며 읊다[求忠堂暇日 憶聖上感吟]

   ― 삼각산에서 서울을 바라보며[三角山望京城]

   ― 압록강에서 옛일을 도올리며 한탄하다[鴨綠江歎古事]

   ― 백두산에서 북경[北京]을 바라보며[白頭山望燕京]

   ― 일을 그만두고 물러나 읊다[辭退吟 二首]2

   ― 성묘를 하며 추억에 젖다[省墓追感]

   ― 달내[達川] 농막에서 읊다[達川田舍吟]

   ― 홍만조 감사께 드리다[奉呈洪監司 滿調]

   ― 금곡정사[金谷精舍]에서 김자진[金子眞]과 함께 읊다[金谷精舍與金子眞 共吟]

   ― 꿈에 동해에서 낚시를 하다[夢釣東海]

   ― 못에 노는 고기와 새를 보고 서문과 아울러 적다[池上觀魚鳥有感 幷小敍]

   ― 치술령에 올라 기도한 후 망부석을 보고 읊다[鵄嶺齊禱後 詠歎望夫石 幷序]

   ― 고암을 지나며[過鼓巖]

   ― 시루성에 올라[登甑城]

   ― 권이산[卷耳山]에서 유황을 캐고 나서 읊다[卷耳山採硫黃吟 二首]

 

◈《[]

   ― 현종대 처음으로 3보를 얻고 나서 그 조치에 대한 군신간의 문답[顯廟朝三寶創得 措置問]

   ― 현종임금이 패를 내려 치하한 글[顯廟朝賜牌文]

   ― 민유중[閔維重]부원군께 올린 글[上閔付院君 維重 甲子]

   ― 조태구[趙泰耈]정승의 편지에 답하다[答趙政承 泰耈 癸丑]

   ― 동생 계립에게 편지하여 구충당을 짓게 하다[寄舍弟 繼立 作求忠堂]

   ― 장남 극경에게 보낸 편지[寄家兒 克敬]

   ― 아들 극경, 극발, 극룡에게 보낸 편지[寄家兒 克敬 克發 克龍]

   ― 극경이 백성들에게 세금독촉을 심하게 한다는 소문을 듣고 꾸짖다[聞督民捧稅責家兒 克]

 

◈《잡저(雜著)

   ― , 유황, 비상을 처음으로 제조한 일기[三寶創造日記]

   ― 구충당 낙성일에 손님과의 문답[求忠堂落成日 與客問答]

   ― 사록(私錄)

 

2

 

◈《잡저(雜著)

   ― 스스로 경계하다[自誡]

   ― 임금가 어버이[君親]

   ― 형제와 부부[兄弟夫婦]

   ― 어른과 어린이, 그리고 벗[長幼朋友]

   ― 조심처신(操心處身)

 

◈《제문(祭文)

   ― 치술령에서 제계하고 기도할 때 올린 글[鵄鶐嶺齊禱文]

   ― 팔도 명산을 돌며 제계하고 기도할 때 올린 글[八域名山齊禱文]

   ― 만호봉에서 유황을 캘 때의 글[㻴瑚峯採硫黃文]

   ― 문경새재에서 제사지낼 때의 글[祭鳥嶺文]

   ― 한강에서 제사지낼 때의 글[祭漢江文]

   ― 아버지 동추공 묘소에서 제사를 지낼 때의 글[祭先考付君東樞公墓文]

 

부록(附錄)

◈《()

   ― 구충당선생 유집을 경하하며 그 말미에 부침[敬題求忠堂先生遺集後]

   ― 또 한 수[]

   ― 또 한 수[]

   ― 또 한 수[]

   ― 또 한 수[]

   ― 또 한 수[]

   ― 또 한 수[]

   ― 또 한 수[]

   ― 또 한 수[]

   ― 또 한 수[]

 

◈《통문[通文]

   ― 연천 임장서원에서 울산 향중에 보낸 글[漣川臨障書阮通蔚山文]

   ― 사학(四學)에서 울산 향중에 보낸 글[四學通蔚山文]

   ― 행장(行狀)

   ― 묘지명(墓誌銘)

   ― 묘갈명(墓碣銘)

   ― 발문(跋文)

   ― 발문(跋文)

   ― 발문(跋文)

 

해제(解題)

   ― 구충당선생문집영인본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 동경통지(東京通誌)

   ― 고도 경주(古都慶州)

   ― 허인문고(許人文稿)

   ― 구충당 이의립선생전(求忠堂 李義立先生傳)

   ― 경주군사(慶州郡史)

   ― 발문(跋文)

   ― 후지(後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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