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조선시대 인물

노공필(盧公弼)

야촌(1) 2010. 9. 26. 02:22

■ 노공필(盧公弼)

    [생졸년] 1445년(세종 27)∼1516년(중종 11).

   [문과] 세조(世祖) 12년 (1466) 병술(丙戌) 춘시(春試) 이등(二等)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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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교 하(交 河) . 자(字)는 희량(希亮), 호(號)는 국일재(菊逸齋). 영의정(領議政) 노사신(盧思愼)의 큰아들이다. 증조부는 우의정 노한(盧閈)이고, 조부는 동지중추부사 노물재(盧物載)이며, 어머니는 첨지중추부사 경유근(慶由謹)의 따님 청주경씨이고, 배위(配位)는 이숙(李塾)의 따님 전주이씨(全州李氏)이다.

 

1462년(세조 8)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의영고직장(義盈庫直長)·사직서령(社稷署令)을 지낸 뒤 1466년 춘시문과에 2등으로 급제, 성균관직강(成均館直講 : 正五品)이 되고 홍문관전한(弘文館典翰)· 부제학(副提學 : 正三品)) 을 거쳐 병조· 이조 ·예의참의(參議 : 正三品))와 도승지(都承旨 : 正三品)) 를 역임하였으며, 1483년 대사헌(大司憲 : 從二品)이 되었다.

 

그뒤 1489년에 공조판서(工曹判書:正二品) 가 된 데 이어 6조의 판서(判書)를 두루 역임하였으며, 외직으로는 경기도관찰사(京畿道觀察使 : 從二品)) 를 지냈다. 1498년(연산군 4) 의정부우참찬(議政府右參贊 : 正二品)) , 1503년 우찬성(右贊成 : 從一品) 에 올랐으나, 이듬해 일어난 갑자사화에 연좌되어 무장(茂長)으로 장배(杖配)되었다.

 

그뒤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귀양에서 풀려나와 다시 우찬성(右贊成 : 從一品)이 되었다가 1507년(중종 2) 영돈령부사(領敦寧府事)로 승진하였다. 이때 명나라에 가서 중종(中宗) 즉위의 경위를 설명하고 명나라 왕으로부터 권서국사(權署國事)의 칙지를 받아 귀국하였다.

 

그 공로로 원종공신(原從功臣) 1등에 녹훈되고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 正一品)에 올랐다.

충성심과 효심이 지극하고 일가친척의 관혼상제를 두루 살폈으나, 자신은 검소한 생활에 만족하였다.

 

[참고문헌]

◇燕山君日記 ◇中宗實錄 ◇國朝人物考 ◇海東名臣錄 ◇燃藜室記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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