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경주이씨 명인록

이천(李蒨) - 국당공파 파조

야촌(1) 2010. 9. 1. 18:23

■ 17世 이천(李蒨)

 

   [생졸년] 1274년(제정공 행장 및 국당 묘지석)∼1349년(충정왕 1). 음력 7월

   [고려문과] 충렬왕(忠烈王) 시년 미상(未詳)

   [고려사마] 충렬왕(忠烈王) 25년(1299) 기해(己亥) 진사시(進士試) 1등(一等) 1[壯元]위(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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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자(字)는 군실(君實), 호(號)는 국당(菊堂), 본관은 경주(慶州). 아버지 이세기(李世基)는 밀직부사 대제학 검교정승(密直副使大提學檢校政丞)이요, 시호는 문희(文僖)이며 어머니는 이천서씨(利川徐氏) 예빈윤(禮賓尹) 찬(瓚)의 따님이다.

 

1299년(충렬왕 25)에 국자감시(國子監試 : 進士試)에 장원급제하여, 한림 사인(翰林舍人) 이부랑중(吏部郞中)을 지내고 충숙왕(忠肅王) 1321년(충숙왕 8)에 우사보(右思補)가 되었는데, 이때 이인길(李仁吉)이 그의 첩(妾)의 아비 서경랑장(郞將) 최득화(崔得和)를 수주수령(隨州守令)에 임명을 위한 고신(告身)에 서명하지 않자, 인길(仁吉)이 왕(王)에게 참소하여 공(公)이 곤장을 맞고 해도(海島)로 유배되니 정직한 소문이 세상에 들리었다.

 

1343년(충혜왕 복의 4년)에 첨의상의(僉議商議)가 되고 1345년(충목왕 1) 3월(三月)에 원나라에 가서 교사(郊赦)를 축하하고 6월에 서연(書筵)에 들어갔다.

 

또한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가 되어 종제(從第)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과 채하중(蔡河中). 한종유(韓宗愈). 박충좌(朴忠佐)로 더불어 날을 바꿔가며 왕(王)을 뫼시고 글을 읽었고 10월에 정당문학(政堂文學)이 되고 참리(參理:從二品)에 올랐다. 


또한 왕이 서연(書筵)을 설치하여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로서 시독(侍讀)하도록 하고. 월성부원군(月城府院君)에 봉하였으며, 시호는 문효공(文孝公)이요, 임실 어은사(南原漁隱祠)에 배향 되었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