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경주이씨 명인록

이주좌(李周佐)/아산이씨 시조(牙山李氏 諡祖)

야촌(1) 2010. 8. 29. 13:21

■ 6世 이주좌(李周佐)

 

   [생졸년] 미상∼1040년(정종 6).

   [관  향] 아산이씨 이적(牙山李氏移籍)

   [고려문과] 목종(穆宗) 시년 미상(穆宗 試年 未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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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훗날 후손들이 아산이씨로 이적 시조로 삼음)  그는 경주이씨 중시조(中始祖) 소판(蘇判) 이거명(李居明)의 현손으로 병부령(兵部令) 금서(金書)의 증손이고, 조부는 병정(兵正) 윤홍(潤弘)이고, 아버지는 시랑(侍郞)  승훈(承訓)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동경유수로 있던 좌복야(左僕射) 이성공(李成功)의 천거로 국학(國學)에 입학하였다.


목종[穆宗 : 고려 제7대 왕(980~1009)]때 과거에 급제하여 상주목기실참군사(尙州牧記室參軍事)로 나아갔고, 이어 감찰어사에 올랐으며, 현종[顯宗 : 제8대 왕(992~1031)] 때 기거사인(起居舍人)을 거쳐 동북면병마사가 되었다.


이때에 그는 삭방도내의 19현이 번적(蕃賊)의 피해를 크게 입는 지역임을 들어 조세의 감면을 요청, 주민의 안주(安住)에 힘썼다. 덕종 초에 우간의대부(右諫議大夫)가 되고, 1036년(정종 2) 우산기상시(右散騎常侍)를 거쳐 1040년에는 형부상서(刑部尙書). 판어사대사(判御史臺事)에 이르렀다. 사공(司空)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에 추증되었다. 

 

그의 아들 서(舒)가 원종 때 판위위시사, 벽상공신삼중대광(壁上功臣 三重大匡)으로 아주백(牙州伯 : 아산의 옛 이름)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본관을 아산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