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世 이인정(李仁挺)
[생몰년] 1241년(고종 29) ~ 미상.
[고려문과] 시년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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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충렬왕 때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충숙왕 때 검교정승(檢校政丞)에 오른 진(瑱)의 형이며, 이제현(李齊賢)의 큰아버지이다. 아들은 부(榑)와 규(樛)로 각각 사인 ·헌납에 이르렀다.
1276년(충렬왕 2)에 우정언으로 있으면서 당시 내수(內竪: 內僚)들이 친종행리(親從行李)의 공으로 허통(許通)되어 조정의 반열을 어지럽히는 것을 첨의부(僉議府)의 낭사(郞舍)들과 더불어 간쟁하였는데, 충렬왕이 노하여 듣지 않고 오히려 일을 보지 못하게 하였다.
또한, 이때 100여인과 공모하여 다루가치(達魯花赤)를 죽이려 하였다는 익명의 투서 때문에 다루가치에 의하여 구금되었다가, 무고임이 밝혀져 곧 풀려났다.
1278년 사간으로 있을 때에도 능력이나 공로가 없고 오히려 흠이 있는 사람들이 관직에 제수되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낭사로서 고신(告身)에 서명하지 않았는데, 이 때문에 왕의 노여움을사 사의대부(司議大夫)백문절(白文節)· 김서(金㥠), 전서(典書) 최수황(崔守璜) 등과 함께 구금되었다가 석방되었다.
이후 광주판관(廣州判官/종5품)을 거쳐 1280년(충렬왕 6) 전중시사(殿中侍史/대궐의 문서를 관장하던 벼슬)가 되었으며, 기거사인(起居舍人/중서문하성의 정5품 관직)에까지 올랐다.
성품이 강직하여 첨의부의 낭사로서 고신에 서명할 때에는 반드시 공적과 허물을 따졌으므로 원망하는 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櫟翁稗說
김일 등을 관직에 임명하다.
고려사 > 세가 권제29 > 충렬왕(忠烈王) 6년 > 3월 > 김일 등을 관직에 임명하다.
김일 등을 관직에 임명하다
장군(將軍) 김일(金鎰)을 시승(侍丞)으로, 낭장(郞將) 우천석(禹天錫)을 잡단(雜端)으로, 좌랑(佐郞) 민훤(閔萱)을 시사(侍史)로, 전 광주판관(前 廣州判官) 이인정(李仁挺)과 지후(祗侯) 민지(閔漬)를 전중시사(殿中侍史)로 임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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