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경주이씨 명인록

이인엽(李寅燁) - 弘文館大提學

야촌(1) 2010. 8. 24. 20:01

■ 30世 이인엽(李寅燁)

 

   [세  계] 형조판서 시발의 손자, 좌의정 경억의 아들

   [생몰년] 1656년(효종 7)∼1710년(숙종 36).

   [문과] 숙종(肅宗) 12년(1686) 병인(丙寅) 정시(庭試) 을과(乙科) 2위/합격연령 31歲  

   [생원진사시] 숙종(肅宗) 10년(1684) 갑자(甲子) 식년시(式年試) 3등(三等) 67위/합격연령 29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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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字)는 계장(季章), 호(號)는 회와(晦窩). 좌의정(左議政 : 正一品) 경억(慶億)의 아들이다. 1684년(숙종 10)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2년 뒤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일찍이, 1689년 숙종(肅宗)이 희빈장씨(禧嬪張氏) 소생을 원자로 정하는 사건을 계기로 서인이 정계에서 물러나게 되었는데, 숙종(肅宗)이 중전 민씨(閔氏)마저 폐하려 하자 전한림으로서 전판서 오두인(吳斗寅), 전참판 이세화(李世華), 전응교 박태보(朴泰輔) 등의 재야 서인인사들과 더불어 반대상소를 올리는 데 참여하였다.

 

그뒤 정계에 복귀하여 양역변통(良役變通)을 주관하였으며, 강화유수(江華留守 : 從二品)로서 치적을 남겨 사당이 세워졌다.특히, 강화부 방비를 위한 진(鎭)의 설치에 관한 그의 견해는 탁월한 것으로 평가받아 후대까지 종종 인용되었는데, 정조(正祖)대에 이르러 실제 시행에 옮겨지기도 하였다.

 

벼슬이 행이조판서(吏曹判書 : 正二品)· 홍문관대제학(弘文館大提學 : 正二品) 에 이르렀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英祖實錄  ◇正祖實錄  ◇國朝榜目  ◇燃藜室記述  *俎豆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