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경주이씨 명인록

이응호(李膺鎬) - 국당공 후 정순공파

야촌(1) 2010. 8. 23. 01:50

■ 이응호(李膺鎬) -  국당공 후 정순공파

    [생몰년] 1871년(고종 8)∼19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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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유학자로, 자(字)는 원명(元命)이고, 호는 관해(觀海)  혹은 진재(震齋)이다.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제주시(濟州市) 오라동(吾羅洞)에서 태어났다.


호남의 의병장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의 문인이다. 관직에 출사하지 않고 향리에서 학문에 전념하였다.

1904년(광무 8) 향리에 문음서당(文陰書堂)을 열어 준재(俊才)들을 모아 후학을 양성하였고, 김석익(金錫翼) 등의 12명의 선비들이 모여 집의계(集義契)를 결성하여 우국론(憂國論)을 펴기도 하였다.

 

1905년(광무 9) 을사늑약에 의해 조선의 외교권이 박탈당하자 집의계 12명은 망곡단(望哭檀)에서 선언문을 낭독하고 일본의 부당한 처사에 항의하였다. 광복 후에는 본인이 소장하고 있던 문적을 정리하던 중에 4· 3 사건이 발생하자 족보와 자신이 저술한 《탁라국서(乇羅國書)》만을 가지고 피신하였다.

 

후에 돌아와 정리하던 소장 문적과 시문집이 소실된 것을 알고는 크게 상심하다 생을 마감하였다.

 

[참고문헌] 

◇제주항일인사실기  ◇증보탐라지  ◇탐라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