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유택(李惟澤)
[생몰년]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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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택지(澤之), 호는 유곡(柳谷)으로, 조선시대 이름난 효자이며 문인이다.
아버지 이서(李曙)와 어머니 청풍김씨(淸風金氏 : 金養天의 女)의 장자로 태어났다.
형제 다섯이 모두 신독재(愼獨齋)김집(金集)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초려(草廬)이유태(李惟泰)의 형이다. 관직은 대흥현감(大興縣監)을 역임 하였고, 나이 70에 모친상(母親喪)을 당하매 극히 슬퍼하여 마침내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조정에서 이러한 효행을 듣고 정려문(旌閭門)을 내렸다. 금산(錦山)의 향현사(鄕賢祠)에 제향(祭享)되었으며 그의 묘지명(墓誌銘)은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썼다.
[자료문헌]
◇姓號譜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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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흥(李大興) 유택(惟澤) 어른에 대한 만사 기유년(1669, 현종 10)
그 당시에 유곡은 남전과도 같았으니 / 當時柳谷似藍田。
진백처럼 훌륭하다 모두들 추대했네/ 吾黨爭推晉伯賢。
옛 규범을 이어받은 전통 있는 가문이요 / 家法自能徵古範。
덕스러운 모습 응당 장수 누리셔야 하리 / 德容應得享高年。
특은이 모의보다 더 큰 것을 하례하고 / 特恩已賀超毛義。
지극 정성 상주 노릇 옛사람을 능가했지 / 至性還嗟過大連。
이제 다시 다정하신 말씀 들을 곳이 없고 / 無復平生承款曲。
들꽃 핀 정자가에 찬 연기만 슬프다오 / 野花亭畔愴寒烟。
[주01]그 당시에---같았으니: 유곡(柳谷)은 이유택(李惟澤)의 호이나, 여기에서는 이유택이 살았던 고을을 말한다. 남전(藍田)은 중국의 지명으로, 좋은 옥(玉)이 생산되기로 이름난 곳인데, 명문(名門)에 어진 자제가 나는 것을 비유하여 ‘남전생옥(藍田生玉)’ 또는 ‘남전출옥(藍田出玉)’이라고 쓴다. 즉 유곡에서 이유택과 같은 어진 자제가 많이 배출되었다는 말이다.
[주02]진백(晉伯)처럼---추대했네 : 진백은 정자(程子)의 문인(門人) 여대충(呂大忠)의 자(字)이다. 정자가 여진백을 칭찬하기를, “진백은 늙어서도 배우기를 좋아하니, 늙어서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더욱 사랑스럽다.
젊은 사람은 당연히 배우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宋名臣言行錄 外集 卷6》 여기에서는 이유택이 늙어서도 학문에 독실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진백에 비유하여 말한 것이다.
[주03]특은(特恩)이---것 : 후한(後漢)의 모의(毛義)는 집이 가난하였지만 효행(孝行)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장봉(張奉)이 그를 존경하여 찾아갔을 때 마침 안양(安陽)의 수령으로 삼는다는 격서가 이르렀는데, 모의가 매우 기뻐하며 벼슬에 나아갔으므로 장봉이 그를 천하게 여겼다.
그러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누차 수령으로 제수하여도 끝내 나가지 않는 것을 보고서 사람들이 비로소 그가 벼슬길에 나갔던 것이 어머니를 위해서였음을 알았다 한다. 《後漢書 卷38 毛義列傳》 이유택이 1659년(현종 즉위년) 12월에 연천 현감(漣川縣監)으로 제수된 일을 모의가 안양 수령(安陽守令)으로 나갔던 일에 비유하여 한 말이다. 《草廬集 卷22 伯氏柳谷李公行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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