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조선사(朝鮮史)

박춘(朴春)이 왜군의 포로로 잡혀 적의 장군이 된뒤 본국으로 투항하려하다

야촌(1) 2010. 8. 18. 13:51

■ 임파재인 박춘(朴春)이 왜군의 포로로 잡혀 적의 장군이  된 뒤 본국으로 투항하려하다. 

    [임피재인 박춘피로이위장후후욕투귀본국(臨陂才人朴春被擄而爲將後欲投歸本國)]

  

글쓴이 : 백사  이항복

 

임피(臨陂)의 재인(才人) 박세동(朴世同)의 아들 박춘(朴春) 또한 재인이었는데, 그는 임진년의 변란 때 금산(錦山)에서 싸우다가 적(賊)에게 포로가 되어 오랫동안 적중(賊中)에 있으면서 공을 쌓아 장수가 되었다.

 

급기야 정유재란(丁酉再亂)때에 적은 박춘을 전봉(前鋒)으로 삼아 군사 천인(千人)을 거느리게 하였다. 그러자 박춘은 전라도(全羅道)로 향하기를 원하였으니, 그 뜻은 대체로 자기 옛 집을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는 이리저리 옮겨 싸우면서 곧장 임피(臨陂)의 옛 집을 찾아가 보니, 옛 집은 이미 빈 터가 되어 버렸으므로, 박춘은 슬픔을 감당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언서(諺書 : 한글)로 그 주초(柱礎)에 쓰기를,“나는 바로 이 집 주인 박모(朴某)이다. 

 

적이 나에게 1천의 군사를 주어 선봉(先鋒)으로 삼았으므로, 내가 문득 이로 인하여 본국(本國)에 투항하여 귀부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한 가지 계책을 내었으니, 즉 적의 포로가 된 우리나라 사람들을 내가 인솔하여 군대로 삼게 해 주기를 바랐다. 

 

그래서 이미 거느린 1천의 군대 안에 포로가 된 우리나라 사람이 3분의 2나 되는데 내가 수시로 아주 믿을 만한 사람들과 비밀히 서로 약속하여, 만일 본국의 군대를 만나면 함께 약속한 포로들과 더불어 일시에 투항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이리저리 옮겨 싸우면서 올라오는 동안에 본국의 군대가 주둔한 곳을 한 번도 만나지 못하여 여러 날을 배회하다가 처음의 계책을 이루지 못하고 통곡하며 돌아가노라.…… ”고 하였다.

 

그런데 그때 전라도 옥야(沃野)에 살던 재인(才人) 임세붕(林世鵬)의 10여 세쯤 된 딸이 또한 포로가 되어 박춘의 장하(帳下)에 있었다. 

 

황혼(黃昏) 무렵에 여러 왜군(倭軍)이 모두 흩어지자, 박춘이 홀로 왜군 두서너 명과 함께 있다가 갑자기 조선어(朝鮮語)로 자기들 끼리 서로 말하면서, “여기가 바로 전주(全州)의 옥야로구나.” 하니, 두 왜군이 그렇다고 대답하므로, 박춘이 말하기를, “마당(麻堂), 기운(氣運), 세붕(世鵬)등이 살아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이때 임세붕의 딸이 곁에서 그들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괴이하게 여겨 혼자서 말하기를, ‘이 사람은 왜장(倭將)인데, 어떻게 조선말을 할 수 있으며, 또 어떻게 우리 아버지의 이름자를 안단 말인가.

 

더구나 마당과 기운은 모두 우리 아버지와 함께 한 시대의 이름난 재인(才人)들인데, 왜장이 어떻게 그들을 알 수 있을까.’ 하고, 마음속으로 매우 괴이하게 여기면서도 박춘이 조선 사람으로서 왜장이 된 것을 몰랐다.

 

그날 밤에 이르러 박춘이 남몰래 그 여아(女兒)에게 묻기를, “너는 누구냐?”고 하자,

“나는 바로 옥야(沃野)의 재인 임세붕의 딸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박춘이 놀라면서 말하기를, “너의 부모는 잘 계시느냐?”고 하니, 여아가 대답하기를, “아버지는 원수(元帥)의 진하(陣下)에 계시고 어머니와 나만 숲 속에 숨어 있다가 일시에 포로가 되었는데, 적이 어머니는 참살(斬殺)하고 나만 살려 주었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박춘이 그를 측은하게 여겨 탄식하였다. 그로부터 며칠 뒤에 박춘이 회군(回軍)하여 남쪽으로 내려갔는데, 그 여아를 말에 태워 박춘의 말 앞에 세우고 함께 해남(海南)에 이르러서는 장차 배를 타려고 하면서 박춘이 소매 속에서 한 통의 봉서(封書)를 꺼내어 그 여아에게 주면서 말하기를, “지금 너를 놓아 돌려보내 줄 터이니, 이 편지를 가지고 가서 너의 아버지에게 전하거라.” 하였다.

 

이어서 한 왜군을 시켜 복병(伏兵)이 있는 곳까지 호송해 주어 그 여아가 마침내 그곳을 탈출하여 돌아가게 되었다. 그 여아는 곧장 옥야로 가서 그 편지를 자기 아버지에게 주었는데, 그 편지의 사연은 역시 지난날 주초(柱礎)에 쓴 내용 그대로였다.

 

인하여 또 다른 한 통의 편지를 동봉(同封)하여 이것은 박춘의 아버지에게 전하도록 했는데, 박춘의 아버지는 그 일이 혹 누설되어 자기 몸에 누가 미치게 될까 염려하여 일체 숨겨 버렸으므로, 같은 이웃의 재인도 감히 이 말을 입 밖에 낼 수가 없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백사집(白沙集)>白沙先生別集卷之四 >雜記

 

출처 : 한국고전종합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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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文]

 

白沙先生別集卷之四>雜記

 

臨陂才人朴春被擄而爲將後欲投歸本國

 

臨陂才人朴世同之子朴春。亦爲才人。壬辰之亂。戰於錦山。爲賊所擄。久在賊中。積功爲將。及丁酉之亂。賊使春爲前鋒。領兵千人。春願向全羅。其意盖欲尋見01居也。轉鬪而直抵臨陂故家。則已成荒墟。春不勝慨然。以諺書題其柱礎曰。我是此家主朴某也。賊與我千兵。使爲先鋒。我便欲因此投歸本國。心生一計。求領我國被擄人爲兵。故所帶千兵之中。被擄者居三分之二。時於誠信人處。密密相約。萬一得見本國軍兵。與被擄同約者。一時投降。轉鬪而上。一不見本國駐兵處。徘徊累日。初計不遂。痛哭而返云云。其時全羅沃野居才人林世鵬女。時年十餘。亦被擄。在春帳下。黃昏。衆倭皆散。春獨與數倭居。忽然以本國語。自相謂曰。此是全州沃野。兩倭對曰。然。春曰。麻堂,氣運,世鵬等。能得生存否。其女在傍聞之。心竊私恠曰。這是倭將。何得爲本國語。又何得知我父名字耶。况麻堂,氣運。皆是我父一時名才人。倭將何得知之。心甚疑怪。而不知朴春爲倭將也。至夜。春潛問其女曰。汝是何人。對曰。我是沃野才人世鵬之女也。春驚曰。汝父母好在否。女曰。父在元帥陣下。獨母與我隱林間。一時被擄。賊斬母而活我矣。春惻然咨嗟。數日。回軍南下。令女騎馬。在春馬前。至海南將乘船。春袖出一封書授女曰。今放汝歸。可將此書。傳致汝父。仍使一倭。護送於伏兵處。其女遂得脫歸。直到沃野。仍以其書授其父。書中所言。亦如前日題柱礎之辭。仍內附一書。使之傳於其父。其父恐事洩。累及於身。一切隱諱。故一隣才人。無敢發言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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