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경주이씨 명인록

이안태(李顔泰)

야촌(1) 2010. 7. 28. 00:55

■ 이안태(李顔泰)

 

   [세 계] 국당공후 제정공파

   [생졸년] 1834년(순조 34)∼1892년(고종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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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유학자. 자(字)는 화현(華顯)이고, 호(號)는 남파(南坡)이다.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경상남도 산음현(山陰縣 : 산청) 실매리(實梅里) 출신이다.

 

이조판서(吏曹判書) 계림부원군(雞林府院君) 이흥적[李興啇 : 조선왕조실록에는 이흥상(李興商)으로 기록됨]의 후손이다. 고조부는 가의대부(嘉義大夫) 이진유(李震儒), 증조부는 이사범(李師範), 조부는 이의영(李毅英)이고, 부친 이우신(李遇新)과 모친 밀양박씨(密陽朴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외조부는 박치보(朴致輔)이다. 두 명의 부인을 두었는데, 초취(初娶)는 홍한익(洪漢翼)의 딸 남양홍씨(南陽洪氏)이고, 둘째 재취(再娶)는 이문영(李文榮)의 딸 안악이씨(安岳李氏)이다.

 

타고난 자질이 뛰어났으며, 여러 차례 과거에 낙방한 후 과거 공부를 접고 성리학(性理學)에 전념하였다.

회정(晦亭) 민재남(閔在南)과 물재(勿齋) 노광리(盧光履)에게 나아가 수학한 후, 절우재(節友齋)를 지어놓고 후학 양성에 힘쓰다 59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초취(初娶) 남양홍씨와의 사이에 1남 2녀를 두었으며, 재취(再娶) 안악이씨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다. 아들은 이덕소(李德韶)이고, 딸은 박제안(朴齊安)·강기옥(姜期玉)·정종만(鄭鐘萬)에게 출가시켰다. 묘소는 금석(琴石 : 산청군 금서면) 쌍현로(雙峴路)에 자리하고 있다.

 

그의 문집 《남파유고(南坡遺稿)》는 3권 1책의 목활자본으로 김황(金榥)의 서문과 이규남(李圭南)의 발문을 붙여 1944년에 간행되었다. 문집 가운데 주목을 끄는 작품으로는 어지러운 세상에서 광명을 찾기 위한 의지를 담은 〈야방금강암(夜訪金剛巖)〉과 〈춘행(春行)〉 . 〈대월(待月)〉 등과 제자들에게 미래를 향해 힘차게 약진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천교설시절우재독서제생(遷喬說示節友齋讀書諸生)〉스승과 제자가 서로 도와서 학문과 도(道)를 성취해나가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절우재기(節友齋記)〉등이 있다. 현재《남파유고(南坡遺稿)》는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참고내용]

남파유고(南坡遺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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