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이후 족보와 문집 등의 위서(僞書) 유행!
역사는 공간과 시간이라는 씨줄 날줄이 얽혀서 만들어진 하나의 진실이다.
그러나 후세에 어떤 문중이나 욕심 많은 공상가가 자신의 조상을 미화 또는 과대, 과장하기 위해 종종 위서를 만들어 낸다.
때문에 수백 년 이상의 시간대를 뛰어넘어 그동안 익힌 한문,한시 실력을 밑바탕으로 한편의 소설을 만들어 내니,그 후유증이 지금까지도 심각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위서를 금쪽같이믿는 탓에 인터넷마저오염시키고이러한 일로 갑론을박,시간낭비를 재촉하고 있다.
특히 위서는18세기 이후 꾸준히 나타나 일제 강점기 에도 그 부끄러운 유습은 이어졌고, 심지어 서울대학교 규장각에도 그 가짜 문집이 버젓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다.
그러나 두찬(杜撰),위서(僞書)는 정통 역사학자나 국문학자 등에 의해 그 진위가 밝혀지게 마련이다.
특히 유명한 인물을 끌어들여 그럴듯하게 꾸민 위서는 잘 연구해보면,전혀 맞지도 않는 생몰연대와당시 인물들 문집에도 나타나지도 않는다는 점이요,
더 심각한 것은 그 유명한 위서 속 인물이 정사인 ‘고려사’, ‘고려사절요’, ‘조선왕조실록’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로 각 문중의 족보에서 주장되는 훌륭한 인물에 대해서는 당 시대의 인물과 비교해보거나 당대의 유명 인사 문집,비문은 물론 과거 급제자 명단과 정부간행 역사서를 비교해보면 쉽게 그 진위를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점도 지적하지 않고 한국학을 한다는 연구소에서 이를 번역하여 위서의 홍보역할을 자임하는 도구로 이용됨은 참으로 난해한 일이다.
18세기에 여러 문중에서 위서를 만들거나 급조된 중국 인물을 만들어 뒤늦게 자신들의 선조라 주장함은 정부에서도 너무나 엉성한 제도를 두었기 때문이다.
첫째로 사회적 분위기가 실학이 유행하던17세기와는 판이하게 다르게18세기부터는 중국인을 우대하는 모화사상(慕華思想)이 뚜렷한 시류를 형성했다는 점이다.
둘째로 화인(華人,중국인)을 조상으로 하는 가문 후손들에게는 군역을 면제해주는 정부의 방침으로 인해 그동안 있지도 않던 중국인 조상이 갑자기 두찬과 위서를 타고 날아와 실제로 병역을 면제받고 있었다는 점이다.
셋째로17세기 중엽에 간행된‘씨족원류’만 보아도 성씨가 같더라도 조상이 다른 가문이 많은데, 18세기부터는 일변하여, ‘성씨가 같으면 같은 혈통일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에 성세(姓勢)를 확대하기 위해 같은 성씨를 사용하는 여러 본관이 합보를 하면서 그 상계 조상을 중국인으로 인명을 만들거나 가공인물로 채우는 위작 족보가 유행했다는 점이다.
넷째 갑오경장 이후 신분질서가 갑자기 무너지면서 그동안 차별받던 상민들이 훌륭한 조상 족보를 사거나 편입,또는 가공인물을 내세워 새로운 족보를 만드는 과정에서 위서는 많이 나오게 되었다.
이처럼 위서 논란에 휩싸인 책으로는‘화해사전(華海師全)’이나같은 서적에 올라있는‘역대전리가(歷代轉理歌)’마저 국문학자에 의해19세기 이후에나 쓰이던 국어라 하여 두찬 과정을 밝히고 있음이다.
이밖에도 중국에서8학사(‘고려사’기록과 다른8학사)로 건너왔다는 사람들이 우리나라로 건너왔다는 시기가 천차만별인데,어떻게 한 배를 타고 오면서8명이 각기 한 수씩의 시를 남겼는지 정말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밖에도 고려역사 선양회서는 고려충신의 근거로 제출된 여러 문중의 서적 중 위서가 없는지 면밀히 검토해야할 것이며,대전의 뿌리공원에 세워진 비석의 문장 중 족보에만 의존해 과장,과대한 것은 없는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특히9대에 걸쳐 근300여 년 간 평장사(정2품으로 장관급)를 지냈다거나 송나라에서 병부상서를 지내다 그 유명한 왕안석과 부국강병책을 논하다가 패하여 고려로 건너왔다는 등의 비문이나 뒤늦은 문집은 정사와 아무리 비교 해봐도 전혀 근거가 잡히지 않기에 더욱 의심이 많이 간다는 점이다.
더욱이 고려의 역대 왕과 충신 위패를 모시는 파주의 고려역사 선양회는 물론 대전의 뿌리공원, 대학의 한국학 연구소가 각 문중이 과대,과장,미화하거나 심지어 두찬,위서한 문서까지 그대로 믿고 하나의 선전장을 제공하는 것은 아닌지 세밀한 검토가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역사는 아무리 흘러도 진실이 전해져야지,후대의 일부 후손들에 의해 가공된 것은 참이 아니라 날조 왜곡된 공상소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몇 몇 문중에서 후대에 꾸며 쓴 가상,공상 소설을 공신력 있는 단체에서 역사의 진실을 외면하거나 세밀하고 정확한 검토 없이 엉뚱한 상업성에만 몰두한다는 의혹을 받아서는 안 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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