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서양(朴瑞陽).
[생졸년] 1887. 9. 30~1940. 2. 15
백정의 아들로 세상을 구하는 한국 최초의 의사가 되다
SBS TV 드라마 '제중원'의 주인공 '황정'(박용우)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백정의 아들로 세상을 구하는 한국 최초의 의사가 되다
SBS TV 드라마 '제중원'의 주인공 '황정'(박용우)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요약] 백정 박성춘(朴成春)의 아들로 천한 신분이었으나 의료선교사 에비슨(O.R. Avison, 한국이름 어비신(魚丕信))과 친분이 있던 아버지를 통해 제중원의학교에 입학하여 1908년 1회 졸업생이 되었다.
졸업 후 오성학교, 중앙학교, 휘문학교 등에서 화학을 가르쳤으며,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이후 1917년 만주 용정으로 이주해 구세의원(救世醫院)을 세워 의료 활동을 하고 숭신학교(崇信學校)를 세워 학생들을 교육했다.
그러나 학생들이 만세운동에 참가했다가 일제에 의해 일시 폐교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이후에는 독립운동 단체였던 대한국민회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에 뛰어들었으며, 대한국민회 군사령부에서 군의관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일제의 탄압으로 숭신학교가 폐교되고 독립운동 기반이 무너지자 1936년 귀국하여 고향인 황해도 연안에서 병원을 운영하다가 1940년 지병으로 인해 5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2008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자료 : 위기백과>
박서양(1887~1940)는 황해도 연안 출생으로 제중원(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의 1회 졸업생(총 7인)으로 한국 최초의 의사이다. 이들은 나라를 잃자 의사로서의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각각 중국, 만주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했으나 그 구체적인 행적이 밝혀지지 않았다. 최근 학계의 연구로 이들의 행적이 일부 알려지면서 이번에 독립 유공자로 선정된 것.
제63주년 광복절(2008년 8월 15일), 독립 유공자로 선정된 박서양은 출신 배경부터 남다르다.
박서양의 행적을 추적해온 연세대 박형우 교수(의사학과)는 "그의 아버지 박성춘(朴成春)은 광대, 무대, 기생 등과 함께 사회의 최하층으로 취급받았던 백정이었다"며 "그는 백정의 아들로 태어나 한국 최초의 의사 7인에 낀 입지전적인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박형우 교수는 "전통 사회에서 억압받던 신분 출신이면서 성공한 의사였던 박서양이 식민지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이를 극복하고자 독립운동에 나선 박서양의 모습은 수많은 조선의 엘리트들이 근대 문명 수용이라는 이름으로 일제의 침략을 용인해온 것과 대조적"이라고 설명했다.
박서양은 1908년 제중원 졸업 후, 모교에서 화학, 해부학 등을 가르치며 외과 환자를 진료했다.
그러나 일제의 국권 침탈 후, 박서양은 상대적으로 안락한 생활을 버리고 1917년 간도로 이주를 한다. 박서양은 간도에 병원(구세병원), 학교(숭신학교)를 세우고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박서양은 국내의 3·1 운동에 호응해 만주 지역에서 조직된 독립운동 단체 대한국민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대한국민회 산하 군사령부의 군의로 임명되었다. 또 1920년대에는 사회주의 성향의 독립운동 단체라고 짐작되는 한족노동간친회의 간부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렇게 만주를 무대로 독립운동을 펼치던 박서양은 1936년 한국으로 귀국한다.
박형우 교수는 "1931년 만주사변 이후 일제가 그가 설립한 숭신학교를 '불온 사상을 고취한다'는 이유로 폐교하는 등 사실상 만주에서의 독립운동이 어려워지자 귀국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는 귀국한 지 4년 만에 해방을 5년 앞두고 55세의 나이로 영면했다"고 설명했다.
백정의 아들이 어떻게 의사가 됐을까?
1894년 갑오개혁 이후에도 여전히 관습적, 제도적 신분 차별이 강고했던 당시 상황에서 백정의 아들이 어떻게 최초의 의사가 될 수 있었을까? 박형우 교수는 "박서양의 아버지 박성춘과 제중원 의사 에비슨과의 드라마 같은 인연이 한몫했다"고 설명한다. 이 두 사람의 인연은 에비슨이 장티푸스에 걸려 사경을 헤매던 박성춘을 치료하면서 시작되었다.
박형우 교수는 "당시 박성춘은 신분을 차별하지 않고 자신을 헌신적으로 치료했던 에비슨에게 큰 감명을 받아서 기독교로 개종하고 그를 스승처럼 따랐다"며 "급기야 허드렛일도 좋으니 자신의 아들인 박서양을 에비슨이 데려가 교육을 시켜주기를 바랐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성춘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에비슨은 박서양을 제중원으로 데려다 놓고, 처음에는 병원 청소, 침대 정리를 시켰다. 박서양이 이런 힘든 일을 아무 불평 없이 거뜬히 처리하자 에비슨은 그가 의학 공부를 할 자질이 있다고 판단하고, 1900년 그를 제중원의 정식 학생으로 받아들였다.
참고로 백정의 딸이라고 박서양 누이(언년이)의 일대기가 단막극 드라마로도 방영 되었음..
자료참조 :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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