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근현대 인물

박정희, 육영수 결혼 청첩장

야촌(1) 2010. 7. 20. 18:31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여사

 

이경령 여사의 둘째 사위인 박정희 대통령은 본관(本貫)이 고령(高靈)이며 직강 공(直講公)의 12대손인 박성빈(朴成彬) 공과 수원(水原) 백씨인 백남의(白南義) 여사의 다섯째 아들로 1917년 11월 14일 경상북도 선산군 구미면 상모리에서 태어났다.

 

1945년 건군과 함께 육군사관학교를 거쳐 국군의 주요 지휘관을 역임하고 1961년 5.16 군사혁명을 주도하여 국가재건 최고회의 의장이 되고 1963년 육군대장으로 예편, 1963년 제5대부터 1979년 제9대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을 역임하는 동안 조국의 근대화의 기수로서 오천 년 이래의 가난을 물리치고 자립경제와 자주국방의 터전을 닦아 세계 속의 풍요한 한국으로 우뚝 서고자 노력했다.

 

또한 겨레의 염원인 평화적 통일의 기틀을 마련하는 등 민족중흥을 이룩한 영도자로서 민족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위대한 업적을 남기고 1979년 10월 26일 서울에서 향년 61세로 서거하여 삼천 칠백만 온 국민의 애도 속에 11월 3일 국장으로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대통령 영부인 육영수(陸英修) 여사는 관성(管城) 육씨(陸氏) 종관(鐘寬,1894~1966) 공과 경주 이씨(慶州李氏) 이경령(李慶齡) 여사의 둘째 딸로 1925년 11월 29일 충청북도 옥천에서 태어나 1950년 12월 대구에서 혼례를 올렸으며 1974년 8월 15일 서울에서 향년 49세로 순국, 8월 29일 국민장으로 대통령 묘 왼편에 쌍분으로 안장되었다.

 

육영수 여사의 모친 경주 이씨 이경령 여사(李慶齡 女史)

 

이경령 여사는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후손으로 1896년 12월 10일 충청북도 보은군 탄부면 장산리에서 이종림(청호공 문중) 씨의 3녀로 태어나 1976년 8월 25일 81세로 세상을 떠났다. 묘소는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교동리에 소재한다.

그리고 여사의 딸 육영수 여사는 금적산 주봉관 함봉을 등진 충북 옥천군 청성면 두릉리에서 육 여사가 태어났다. 안산이 망월을 마주하는 두릉댕이 자연부락이다. 성종 때 제주목사를 지낸 중조 8세 육한 공이 낙향하면서 제주의 조랑말을 많이 가져와 길러 그때부터 마장리라는 지명도 생겼다.

평화롭고 한가롭게 자리 잡은 두릉 마을은 주산이 관함봉(관모봉)이며 이는 산 모양이 관처럼 생겼다 하여 머리에 쓰는 모자 즉 후장의 머리와 같은 관모 형상을 하고 있다.

안산은 예로부터 문수산으로 산 모양이 둥근 모양을 하여 일월과 같고 마치 태양이 떠오르는 모양과 같다. 금성용이 수성 맥으로 전환하여 와혈로 맺혀 있다고 한다.

육영수는 관성 육씨(옥천 육씨) 아버지 육종관과 경주 이씨 이경령 여사의 둘째 딸로 1925년 11월 29일(음력 10월 14일)에 태어나 1974년 8월 15일 서거했다.

육종관은 옥천 갑부로 젊은 시절 16살에 두 살 아래인 경주이씨(이경령)을 아내를 맞이한다.
육종관은 본부인인 경주이씨(이경령) 소생 자녀 4명과 5명의 소실에서 18명의 자녀 등 모두 22명의 자식을 두었다.


사랑채에는 소실들이 살았고 안 채에는 경주이씨(이경령) 본부인이 살았으며 울창한 후원에는 사당과 정자도 있었다. 경주 이씨(이경령)부인은 소실 관리를 잘 했고 집안에 싸움 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며 소실들은 이경령 여사를 어머니라 불렀다고 한다.

 

 

↑제3, 4공화국의 박정희 전 대통령

 

↑고 육영수 여사 생전모습

 

 

1950년도 6,25 동란의 해가 저물어가는 12월 12일(화요일). 오후 1시 30분쯤부터 대구의 유서 깊은 계산 성당에는 청첩장을 손에 든 하객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엄숙한 성당에서 갖는 결혼식에 낯이 설었던 하객들은 성당 정문에 들어서면서도 자신들이 청첩장에 적힌 대로 바로 찾아온 지 여부를 확인하느라 새삼 청첩장을 꺼내 들 여다 보곤 했다. 청첩장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請牒狀(청첩장)


朴東熙氏 二弟 正熙君(박동희 씨 2제 정희 군)
陸鍾寬氏 二女 英修孃(육종관 씨 2녀 영수 양)


이 두 분은 서로 百年(백 년)을 함께 할 뜻을 이루어 여러 어른과 벗을 모신 앞에 華燭(화촉)을 밝히려 하오니 부디 오시어 복된 자리를 더욱 빛내 주소서.


時日(시일) : 檀紀(단기) 四二八三年 十二月 十二日(火曜日) 下午二時(화요일 하오 2시)
場所(장소) : 大邱市 桂山洞 天主敎聖堂(대구시 계산동 천주교 성당)

 

檀紀(단기) 四二八三年 十二月 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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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禮(주례) : 許億(허억)


請牒人(청첩인) : 吳德俊(오덕준) 曺在千(조재천) 辛相默(신상묵) 李聖祚(이성조) 孫熙善(손희선). 朴春植(박춘식)

同夫人 貴下(동부인 귀하)

 

청첩 문구는 당시로선 매우 세련된 것이었다.

`두 분' `뜻을 이루어' `어른과 벗을 모신' `빛내 주소서' 등은 새 시대의 젊은이답게 참신한 우리말의 묘미를 살린 문투였던 것이다.

 

또 청 첩 인으로 적힌 여섯 사람의 이름도 음미해볼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신부 아버지의 반대 속에 치르는 결혼식이라 신부 측과는 무관한, 모두들 신랑 측의 지인들이었다.

 

 

↑육영수 여사

[생년] 1925년 11월 29일, 충북 옥천군

[졸년] 1974년 8월 15일 (향년 4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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