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전공파 파조 강(派祖 康+羽)에 대한 고찰(考察) |
공의 휘는 강(康+羽)으로 중조 소판공(蘇判公)의 14세손으로서 정순대부(正順大夫) 판전객시사(判典客侍事)의 벼슬을 하셨으나 난중(亂中)의 화를 피하여 산중촌락에서 독서만 즐기셨다.
공의 백형은 휘 핵(翮)으로 자(字)가 만리요, 호는 열헌(悅軒)으로 문하평리의 벼슬을 하셨고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로 증직 받으셨다. 열헌공이 슬하에 세아드님을 두셨으니 첫째가 성암공(誠庵公) 휘 인정, 둘째가 동암공(東菴公) 휘 진, 셋째가 송암공(松巖公) 휘 세기이며, 공의 중형인 휘 翩(편)은 아들이 직간(直幹)으로 장수이씨로 분적 되었다.
공의 아드님은 휘 신유(臣裕)로 봉익대부예의판서를 지내셨다.
공은 14개 대파중에서 아홉번째 대종으로 첫손자가 낭장 휘 원무(元茂)이시고, 아들 첨정공 휘 운경(雲敬)에서 5개중종으로 분파하고, 판서공의 둘째 아들은 병정공 휘 문저(文著)로 그 아래로 예빈시 봉사공 휘 태(泰)를 두셨다.
5개 중종은 첫째가 비순위중랑장 휘 修(수), 둘째는 휘 耕(경)인데 후손이 없는 것으로 전해온다. 셋째는 감찰공 휘 자이고, 넷째는 예의판서 휘 오, 다섯째는 훈련원판관 휘 사이다. 공은 고려 문관위계의 정순대부라는 품계로 정3품 당상관이시니 고려 25대 충렬왕34(1308년)에 여러 관계를 고치면서 새로 제정된 사실을 고려사에서 찾아 볼 수 있다.
※ 충렬왕 때 품계를 보면
당상관으로는 정1품 : 삼중대광(三重大匡), 종1품 : 중대광(重大匡),
정2품 : 광정대부(匡靖大夫), 종2품 : 통헌대부(通憲大夫)
정3품 : 정순대부(正順大夫),
당하관으로는 정3품 : 봉순대부(奉順大夫),
종3품 : 중정대부(重正大夫)/중현대부(重顯大夫),
정4품 : 봉상대부(奉常大夫),
종4품 : 봉선대부(奉善大夫) 순으로 기록되어 있다.
전객시라는 관사가 의부(그 뒤 고려 26대 충선왕 2년 1310년에 예의사로 개칭)에 배속되어 외국의 사신 또는 빈객을 영접하고 왕실과 재상들의 주요행사를 주관하는 기관으로 으뜸은 판사(判事)이다.
공은 어느 때 계셨는가에 대하여 자세한 기록은 없으나 그 당시 밀직승지인 동암공 휘 진이 공의 큰집 둘째 조카이며 충렬왕 13년(1287)에 공의 연세가 44세로 추정하여 볼때 익재공이 태어나셨으니 공이 익재공의 종조부가 되시고 동암공의 막내 삼촌이 되시매 그때 공의 연세가 동암공과 몇세차이가 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세대적으로 공께서 판전객 시사라는 벼슬에 계실 때 충렬왕 24년(1298)경부터이며 공의 연세가 68세가 되시든 1308년에 충렬왕이 승하하고 공께서도 낙향하신 걸로 추축된다.
공의 관직인 정순대부 판전객 시사에 대하여 살펴보면,
시기---고려 충렬왕 34년 1308년이며
품위---정3품 당상관이고
관사(官司)---전객시(典客寺)로 지금의 의전실에 해당.
직위---판사(判事/정3품)으로 지금의 의전실장이셨다.
공의 묘소는 실전(失傳)으로 후손들이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다가 서기 1988년 중시조 동역내인 울산시 울주군 청량면 동천리 양천부락 후원에 설단하고 단비를 세우니 이제 공의 크나큰 자취를 남기시게 되었다. 매년 음력 9월 하정일(下丁日)에 향사를 봉행하고 있다.
▶ 호계공
휘는 을규(乙奎), 자는 문경, 호가 호계(虎溪)와 양졸당(養拙堂), 1508년 남중리서 출생, 랑장공(휘 수)의 증손, 1531년 진사와 생원급제, 1532년 호명리 이거 정사건립, 회재(이언적)선생과 도의교 우로 학문에 심취, 1535년 별시문과 장원, 승문원 교리 겸 경연춘추관기사관, 중국사신(3회), 경산현령, 초계군수, 청백리 녹선, 1543년 호명낙향, 39세로 별세, 묘소는 쌍분으로 북군 화개산(사목정-음10월15일 시향), 슬하에 5형제가 의병 창궐하여 장자 휘 홍검은 호가 모헌이고 충순위로 곽재우 창의록에 록하고, 차자 휘 홍정은 무과급제하고 호가 만호로 창의록에 록하고, 3자 휘 홍각은 호가 동강이고, 진사와 찰방으로 창의록에 록하고, 4자 휘 홍로는 인의로 화왕산 의병, 계자 휘 홍순은 호가 동우로 창의입훈, 상서원직장으로 병조참의로 증직되셨다.
손자 휘 시화(승사랑, 군지감봉사), 휘 시인(장사랑,영천훈도), 휘 시립(예천훈도)으로 창의 훈록하고, 증손 휘 형(참봉, 동래교수)도 창의녹훈 되셨다.
울산 양천의 감찰공(휘 자)의 7세손인 휘 석종은 초휘가 석숭, 수문장으로 창궐하여 선무3등 공신으로, 울산읍지에 기록되었다. 울산 양천의 소판공 사단은 감찰공의 후손들이 설단, 수호하고 있다.
☞ 북산서사(北山書社)
북산서사는 호계공 25세때 남중리서 호명리로 이거하여 정사를 건립, 학문에 전념하였고, 북산사(北山祠)는 1823년 북군동 묘소에 창건, 훼철되었다가 1967년 이건하여 묘호를 지경(持敬), 당호는 포요(抱瑤)로 심덕재를 갖추고 3월 초정일(음력)에 후손과 향인들이 제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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