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성씨별관향

전주리씨 유래(全州李氏 流例)

야촌(1) 2009. 8. 28. 23:02

■ 전주이씨 유래.

 

우리나라의 이 씨는 한국 자생의 이 씨와 외국에서 귀화한 외래의 이 씨로 나눌 수가 있다.
우리나라는 처음에 성이 없다가 통치자 곧 귀족부터 성이 있게 되었는데, 문자가 없었으므로 자연 중국 한자로 표기하게 되었다.


오늘날 한국의 이씨는 237본이나 된다. 이 중에서 역사가 제일 오랜 성은 경주 이 씨이고, 중국에서 귀화한 대표적인 이 씨는 연안 이씨이며, 월남에서 귀화한 화산 이 씨도 있다. 그러면 우리 전주이씨는 어디에서 나왔는가?

 

●중국에서의 귀화설

 

작자 연대 미상의 <완산실록>에는 우리 시조에 대하여 이렇게 씌어 있다.

`야사 실록'을 참고해 보면 우리 시조 사공공의 휘는 한이요, 자는 견성이시다. 공은 본디 중원에 살았는데, 태어나실 때부터 거룩하여, 총명이 과인하시고 재질이 특이하여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아시었다.

 

공의 나이 15세에 한림원에 입학하시고, 계모 주씨가 매우 사납고 악했으나 지극한 효성으로 모시었다.

그래서 그 때 동요에 `오얏나무 밑에서 반드시 왕기가 나타나리라.' 하더니, 마침 배가에게 모함을 받아 공이 바다를 건너 우리 나라로 오니, 그 때 나이 18세였다. 나이 약관도 되지 않아 문장이 비범하고 도덕이 탁월하여 인자한 기풍을 크게 떨쳤다.

 

불과 수년에 사람들의 칭송하는 소리가 조정까지 들려 신라의 문성왕이 불러 사공 벼슬에 임명하였고, 1년 남짓 다스리매 국정이 공평하여 모든 관원들이 교화되고 만백성들이 즐겼다. 그래서 태종의 10세손 김은의가 사위를 삼았다.사공공은 본디 중국인으로 배씨의 모함을 받아 신라로 와 사공 벼슬에 올라 김씨를 아내로 맞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작가 미상의 <이씨 득성의 유래>란 글에서는 중국 이씨의 역사를 약술하고서 끝 부분에 `우리 전주리씨가 본래 중국 당나라 황실의 후예라 하나, 그 파계와 원류를 밝힐 분명한 근거가 없고, 우리 시조 휘 한으로부터 대대로 완산인이 되었다.'라고 하였다.

 

●경주이씨로 부터의 분적설

 

경주이씨는 신라 육성의 하나로 우리나라 이씨 중에서는 역사가 제일 오래 되었다.

<경주이씨대동보> 총론편을 보면 경주이씨의 유래가 나온다. 자못 전설적이지만 신라 육 성의 시조 6명은 모두 하늘로부터 내려온다. 곧 육인천강설이다.

 

경주이씨의 시조 알평은 처음에 하늘로부터 박바위로 내려왔다는 것이다. 이곳은 육촌 중 알천 양산촌인데 나중에 급량부로 행정구역 명칭이 바뀌었다. 서기 기원전 69년 3월 초하루에, 6촌장이 알천의 바위 위에 모여 양산 아래를 바라보니, 이상한 기운이 번갯빛 같고 흰 말이 무릎을 꿇고 절하는 모양이 보 여, 찾아가 보니 검붉은 알이 있는데, 말은 사람을 보고 슬피 울며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그래서 6촌장이 그 알을 깨 보니 한 사내아이가 나타났다. 모두들 이상히 여겨 그 아이 이름을 혁거세라 불렀다. 이 혁거세가 13세가 되자 기원전 57년에 이를 왕으로 삼고 나라 이름을 신라라 하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신라를 건국한 공로로 알평은 아찬벼슬에 오르고 기원전 32년에 이씨를 사성받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알평이 경주이씨의 시조인데, 과거의 <경주이씨족보>에는 이알평의 먼 후손 이거명을 중시조 1세로 삼아 계대수를 따져 왔다. 그래서 이알평부터 이거명까지 몇 대가 흘러간 지도 몰랐다. 그러다가 근 2백년 전 조선 말기 무렵에 경주이씨에서 갈라져 나간 합천이씨 족보에서 이알평부터 이거명까지의 대수와 이름이 나타나 36대의 명단을 찾아냈다.

 

 

(1세)알평- (2) 유 - (3) 타 - (4)중가 - (5) 석 - (6)문상- (7)방

- (8)수장 - (9) 수 - (10)기정 - (11)미선 - (12)성립 -(13)서

- (14)계환 - (15) 걸 - (16)선장 - (17)기담 - (18)인흥 - (19) 확

- (20)선정 - (21) 체 - (22)태휘 - (23)우영 - (24) 준 - (25) 소

- (26)경지 - (27) 욱 - (28)원장 - (29)한로 - (30)계탕 -(31) 도

- (32)사언 - (33) 기 - (34)희두 - (35) 계 - (36)거명-

..............................(34)진두 - (35)백전 -(36)공

...........................................................-(36)한

 

위에서 보면 시조 이알평부터 36세손 이거명까지의 계통이 분명하다. 과거에는 이거명을 중시조 1세로 따져온 것이다. 여기서 우리 전주리씨와의 문제는 바로 34세 희두의 동생 진두와 그의 둘째 손자인 한이 관계되는 것이다. 곧 진두씨의 약력은 이러하다.

 

"공도 문장가로서 경문왕 때 임오년에 형 시중공과 같이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이 시랑평 장사내사상병부령에까지 이르렀다. <세장보>를 참고하건대 이분의 손자 한이 완산리씨의 시조가 되었다더라."이진두의 둘째 손자 한이 우리 전주리씨의 시조 사공공이 라는 것이다.

 

그러나 경주이씨에서 갈라져 나간 합천이씨의 <상서공파세보>에는 (34세)진두-(35)백전-(36) 공-(37) 한으로 세계를 꾸며 놓고 이한의 약력에 대사공 은상서 어사중승 상상주국으로서 자금어대를 하사받았다.

 

배위는 군윤 김은의의 딸이다. 전주리씨의 시조라고 적어 놓았다. 한이 전주리씨의 시조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으나, 경주이씨 족보와 다른 점은 공과 한을 부자 사이로 바꾸어 놓은 것이 또 이상하다.

 

경주이씨에서 갈라져 나간 성으로 경주이씨 족보에 분명히 남아 있는 것은 원주이씨 , 재령이씨, 아산이씨, 우계이씨 등이다. 이 성들은 분적된 기록이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 전주리씨가 경주이씨에게서 갈라져 나갔다는 기록은 위에서와 같이 매우 애매하고, 또 그 기록이 한씨에 기록되어 있지 않고 그 조부의 약력에 기재되어 있는 것도 매우 이상하다.

 

이상으로 볼 때 우리 전주리씨가 중국에서 왔다, 또는 경주이씨에서 갈라져 나왔다 하지만 모든 기록이 애매모호하다. 중국에서 왔다는 기록은 아마도 옛날 사대사상에서 연유한 야사적 기록이라 세직의 세자가 당나라 태종 리세민과 같은 항렬자로 본 것이다. 또 경주이씨에게서 왔다는 기록은 경주이씨의 역사가 오래니까 혹시 갈라져 온 것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경주이씨는 현재 이알평 시조로부터 오늘날 75세희자 항렬까지 2천여년의 역사를 가졌고, 경주이씨의 중시조 이거명과 경주이씨의 이한은 동항이므로 이분이 우리의 시조라면 연대는 비슷하리라 본다.

 

그러나 기록이 분명치 않으니 우리의 시조 신라 사공 한할아버님의 조상이 어디에서 왔느냐 하는 문제는 현재로서는 단언할 근거가 없어 후일을 기약할 수밖에 없겠다. 그러나 우리 전주리씨에서 갈라져 나간 대흥이씨, 영해이씨 등도 있다

 

출처 : 전주이씨 칠성수공파종회(全州李氏漆城守公派宗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