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보재이상설선생.

보재 이상설선생 제92주기 순국 추모식

야촌(1) 2009. 4. 26. 16:17

보재 이상설선생 제92주기 순국  추모식

 

 

 

 

 

 

 

 

 

 

 

 

 

 

 

 

 

 

 

 

 

 

 

 

 

 

 

 

 

 

 

 

 

 

 

 

 

 

 

 

 

 

 

 

 

 

 

 

 

 

 

 

 

 

 

 

 

 

 

  2009년 4월 22일(수요일) 진천군과 사단법인 보재 이상설 선생 기념사업회(회장 이재정 前통일부 장관)는 4월 22일 진천군 진천읍 산척리에 위치한 보재 선생의 생가와 사당의, 숭렬사에서 보재(溥齋) 선생의 항일구국 독립운동의 뜻을 기리는 순국 제92주기 추모식을 가졌다.


  이날 추모식에는 지역의 각급 기관. 사회단체장. 이상설 선생 기념사업회 회원과, 주민 등 200여 명이 참석해 고인의 뜻을 엄숙히 기렸다.

 

  이날 추모식은 제1부 진천 유도회의 집례로 초헌관에 유영훈 진천군수, 아헌관에  오상근 광복회 충북지부장, 종헌관에 이재덕(고령군 화수회)종친이 헌관으로 제례를 올린 후,  제2부에는 이재정 보재 선생 기념사업회장의 모시는 말씀과, 박창표 국가보훈처 청주지청장, 김영일 광복회장, 유영훈 진천군수 등이 이상설 선생의 위업을 기리는 추모사가 이어졌고, 40여 명의 진천여중의 합창단이 순국선열의 노래로 끝을 맺었다.


  특히 오후 2시 30분부터 진천중학교에서는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과 독립기념관 박민영 박사의 선양 강연회를 열어 이상설 선생의 업적과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리는 뜻깊은 자리를 가졌다.


  이날 추모식을 가진 이상설 선생은 지난 1870년 현재의 생가 터인 진천읍 산척리에서 태어나 유학 출신이면서 영어, 러시아어, 프랑스어 등, 7개 국어를 구사하면서  법률 등의 신학문을 깨우쳤고, 1894년 식년 문과에 급제한 뒤 성균관 관장, 한성 사범학교 교관의 여러 요직을 거쳐, 법무협판(法部協辦), 의정부 참찬(議政府參贊)을 역임했다.


  선생은 지난 1907년 6월 고종의 밀명을 받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해 이준, 이위종과 함께 한국의 국권회복 문제를 국제여론에 호소했다. 그 후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을 순회하며, 국권회복 활동을 전개했고, 1910년에는 러시아 연해주 일대에서 망명생활을 하면서, 한일 강제합병을 규탄하는 성명서를 냈으며, 신한혁명 단, 권업회, 13도의 군, 광복군 정부 등의 독립운동 단체를 결성, 지도자로 일하다 1917년 4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한편, 이상설 선생 기념사업회는 2000년 7월 국가보훈처로부터, 비영리법인으로 출범한 이후, 그동안 이상설 선생의 애국 독립운동의 뜻을 받들어 선생의 독립운동 행적을 찾아내고 재조명하기 위해 선생의 생가가 있는 진천 숭렬사에서 매년 추모식(4월 22일)을 개최하고 있다. 

 

  아울러 중국 용정에 이상설 선생 전람관 건립, 서전서숙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 숭렬사 경내의 동상 건립, 국제학술대회, 선양 강연회, 세계 만국평화회의 100주년 기념 사진전, 숭렬사 정비사업 등, 각종 활동들을 활발하게 전개해 오고 있다.


  특히 최근 독립운동가들의 국적회복이 추진되고 있으나 이상설 선생의 경우, 직계 후손이 현재 국내에 전혀 생존해 있지 않은 관계로 신청주체가 없다 하여, 이번 일차에서 누락되었으나, 보재 선생의 기념사업회 이재훈 기획이사의 노력으로 선생의 기록이 남아있는 자손의 제적등본을 찾아내 국가보훈처에 신청함으로써 국적회복을 위한 길을 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