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선현들의 묘.

서계 박세당 묘(西溪朴世堂墓)

야촌(1) 2009. 4. 25. 00:27

 

 

 

 

 

 

 

 

↑서계 박세당 고택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13호(2002. 9.16)
경기도 의정부시 장암동 산 146-1 


 서계 박세당(1629년(인조 7) - 1703(숙종 29))은 조선 후기 중농주의 실학자로서 그 역사적 업적이 뛰어나다.
참판 정(炡)의 아들로 1660년(현종 1)에 증광문과에 장원, 1664년 부수찬(副修撰)으로 황해도 암행어사로 나갔다.

 

1667년 수찬에 이어 이조좌랑이 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아 장형(杖形)을 받았다.

그 해 동실사서장관(冬室使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예조참의 등을 지낸 뒤, 1694년 갑술옥사에 소론이 득세하자 승지로 특진하였다.

이어서 공조판서를 거쳐 이조ㆍ형조의 판서를 지냈다.1703년 중추부판사로 기노소(耆老所)에 들어가 《사변록(思辨錄)》을 저술, 주자학을 비판하고 독자적 견해를 발표하였다.

 

이에 반주자(反朱子)로서 사문난적(斯文亂賊)의 낙인이 찍혀 삭직, 유배 도중 옥과(玉果)에서 죽었다.

사직 이인엽(司直 李寅燁/대제학과 이조판서를 지낸분으로 좌의정 화곡 이경억의 아들)의 상소로 신원되었다.

 

이중환(李重煥), 안정복(安鼎福) 등 보다 앞선 시대의 실학파 학자로서, 농촌생활에 토대를 둔 박물학(博物學)의 학풍을 이룩하였으며, 글씨도 잘 썼다. 저서로 《사변록(思辨錄)》, 《색경(穡經)》, 《서계집》 등이 있다.

 

서계 박세당의 묘는 장암동 소재 석천동 구거 북쪽 언덕에 위치하고 있으며, 봉분은 단분으로 두 부인과의 삼위합장묘(三位合葬墓)이다. 호석을 이용한 대형의 방형 봉토분이 특징적이며, 묘표 및 신도비는 최근에 조성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