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선현들의 묘.

성여완 선생 묘(成汝完先生墓)

야촌(1) 2009. 1. 25. 03:37

■성여완 선생 묘(成汝完先生墓)

   [생졸년] 1309년(충선왕 1)~1397년(태조 6)

 

 

↑소재지>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고일 2리 산24번지.

 

↑구 묘비석

 

↑근대 새로세운 묘비석

 

●성여완(成汝完)

 

1309~1397댸인 고려후기와 조선초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창녕(昌寧). 호눈 이헌(怡軒).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1336년(충숙왕 5) 문과(文科)에 급제, 예문춘추검열(藝文春秋檢閱)을 거쳐 군부정랑(軍簿正郞)이 되었다. 

 

이어 상서우승(尙書右丞) 등을 거쳐 전법판사(典法判事)를 지냈다. 그 후 해주(海州)와 충주(忠州)의 목사(牧使)를 지내고 공민왕 때 민부상서(民部尙書) 재임시 신돈(辛旽)이 주살되자 그 일당으로 몰려 유배되었다.

 

우왕 때 정당문학상의(政堂文學商議)에 오르고 창녕부원군(昌寧府院君)에 책봉되었다. 1392년(공양왕 4) 정몽주(鄭夢周)가 살해되자 국운이 기울어졌음을 알고 포천(抱川) 왕방산(王方山)에서 은거했다. 

 

조선이 개국하고 노인직(老人職)으로 검교문하시중(檢校門下侍中)에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으로 책봉되었으나 사퇴하고 절개를 지켰다. 창녕 물계서원(勿溪書院)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