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10·4정상선언이 평화의 길이다 - 이재정
[한겨레]
이재정 전통일부장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완전히 실종된 것은 한반도 평화진작과 동북아 안정의 희망을 주었던 역사적인 6·15 공동선언과 10·4 남북 정상선언이다.
정부 인수과정에서 한-미 동맹외교의 강화, 북핵문제와 인권문제에 대한 전면공세, 그리고 미사일 방어망(MD) 참여 등 군사적 전략의 변화 등이 한반도 평화에 중대한 위협이 될 것이라는 논란 가운데 이미 새 정부는 지난 “10년의 평화번영”을 송두리째 손상시키고 말았다.
정부 안에서도 여러 차례 엇갈리는 발언이 나오면서 국민들은 정부의 대북정책이 과연 무엇인가 알 수 없는 혼란스러움과 함께 과연 대북대화의 의지가 없는 것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미국의 대선 정국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와병설 등과 맞물려 북-미 합의사항이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면서 마침내 북은 핵시설 재가동 준비에 들어가는 등 어려운 국면으로 진전되고 있다.
실제로 북핵신고의 완료시점에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을 제외시키는 것은 6자 회담의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른 미국의 책임이며, 신고에 따른 검증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북-미 사이에 협의하여야 했다.
10·4 정상선언은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으로서 6·15 정신을 구체적으로 구현하며 “통일을 지향”해 갈 수 있도록 남북대화의 체계적 구조를 만들어 내었고 공동번영을 위한 경제협력의 틀과 내용을 대폭 확장하였다.
이명박 정부는 대북정책의 기본으로 사실상 사문화되다시피 했던 남북 기본합의서와 비핵·개방·삼천달러를 내걸었다. 그런데 남북 기본합의서는 1992년 남북의 총리가 서명하면서 각각 의회의 인준을 받아 법적 발효를 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북은 최고인민회의의 인준을 받은 반면, 남은 법 절차상 국회인준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발효절차를 이행하지 못하였다.
반면 10·4 정상선언은 남북교류협력법이나 남북관계발전법 등의 규정에 따라 정상회담을 추진하였고 또 법이 정한 바에 따라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비준함으로써 법적인 발효절차를 거쳤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법적발효절차를 밟은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은 인정하지 않고, 발효절차를 제대로 밟지 못한 남북 기본합의서를 남북관계의 기본으로 하겠다고 함으로써 남북관계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 왔다.
10·4 남북 정상선언에 대하여는 정치적인 목적에서 편견을 만들어냈다. 예컨대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경제협력사업을 다하려면 우리는 경제파탄에 이를 수도 있다는 허황한 주장을 하고 있다. 최근 통일부는 경비가 14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주장도 하고 있어서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필자가 이 계획을 마련할 당시 정부의 계산과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당시 정부는 남북 경제협력 사업 가운데 철도·도로·전력과 같은 기반시설은 정부가 우선 투자하거나, 북의 핵문제가 해결되어 상황이 좋아지면 국제금융으로부터 개발자금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는 예견 아래 2007년 당시 1조2천억으로 계상되었던 남북교류협력기금을 고려해 시행기간 5년~10년이 걸릴 이 사업을 남북교류협력기금에서 충분히 충당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리고 새 공업지구 개발이나 조선사업단지 개발 등은 민간의 상업적 투자로 감당해 갈 수 있다는 것이 정부와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이 선언은 한반도 평화정착과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을 만들어 미래의 희망을 주는 역사적 선언이었다.
정부가 진실로 경제문제를 고민한다면 10·4 정상선언을 적극 수용해 이를 진지하게 이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제 국민들은 여기에 물을 주고 싹을 나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재정 성공회대 교수, 전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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