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8.11 | 뉴스앤조이
남북관계, "역사의 토대 위에서" 풀어나가라!
이재정 신부(성공회대 교수)는 "정부는 국민의 의견을 따르게 돼 있다"며 당장 현 정부의 모습에 낙담하지 말고 긴 역사의 흐름 속에서 국민과 국제사회가 남북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정권 초기부터 자리를 잡지 못하고 악화일로를 걷던 남북관계가 금강산관광객 피살사건 이후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참여정부에서 통일부장관을 역임하고 남북정상회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행한 이재정 신부(성공회대 교수)를 만나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관계 해법과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를 위한 교회의 역할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이재정 신부는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를 직접적인 대화가 아닌 국제관계의 틀에서 풀어나가려 한 점을 지적하면서 "(정부가)6. 15공동선언과 10. 4 선언이라는 역사의 토대위에서 북한과 대화의 길을 찾아야 한다. 이를 무시하고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가 없다"고 강조하며 지난 10년 간 구축한 대화의 틀을 가동시켜, 교류·협력의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남북관계의 미래에 대해서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남북교류인원이 1997년 1000 여명에서 2007년 말 16만 명으로 늘어난 예와 북한의 핵실험이 북미간의 대화로 귀결된 점 등을 제시하며 남북관계의 미래를 낙관했다.
이 신부는 "정부는 국민의 의견을 따르게 돼 있다"며 당장 현 정부의 모습에 낙담하지 말고 긴 역사의 흐름 속에서 국민과 국제사회가 남북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민족의 미래가 통일에 있다'는 역사적인 책임 앞에 우리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교회의 대북지원사업과 대북선교에 대해서도 "분단이나 냉전 등 남북관계를 보는 기존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한국교회가 대북지원과 선교를 효과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대북선교통합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다음은 이재정 신부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악화일로인 남북관계를 풀어 가기 위한 해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한반도 평화를 위한 장기적인 그림이 필요하다. 금강산 사태 이후 멀리 보는 밑그림의 필요성을 느꼈다. 광복 60년, 북미관계 가속화, 올림픽 이후 중국의 위상변화 등 주변 정세의 흐름을 볼 때도 남북문제에 대한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다.
밑그림을 그리기 위해 중요한 것은 △공존의 가치와 방법, 실천 등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나가는가. △지난 10년이 만들어 놓은 화해·협력의 남북관계가 무엇인가. 이런 질문에서 시작해 그 이후 만들어나가야 할 과제들을 풀어나가면 좋겠다.
'공존'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내가 얘기하는 공존이란 다양성과 차이를 존중하는 입장이다. 공존을 위해서는 10. 4 선언 과 이후 총리회담에서 만들기로 합의한 각 분야의 체계적인 남북 대화채널이 필요하다.
현 정부에서는 대화채널에 제동이 걸린 것으로 보는가?
현재는 대화채널을 가동하지 않고 있다. 가동을 하면 된다. 지난 총리회담 때 합의한 틀을 가동시킬 필요가 있다. 정상회담 때 합의해놓은 종전과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구체적인 남북협력 체제를 만들고, 이 토대위에 주변국과 관련국의 참여를 통해 구체적인 실천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현 정부가 안 하고 있는 것이지 평화체제를 거부하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 정부 안에서 이런 방안을 실천해나갈 실무진이 있다고 보는가.
현 정부는 남북관계를 국제적 공조의 틀에서 시작해보려 했는데, 국제적 공조 틀 보다 남북만의 관계가 갖는 우선적인 의미가 있다.
특히 정전과 평화 체제는 남북이 합의했기 때문에 남북이 어떻게 해나가는가가 중요하다. 이를 접어놓고 남북관계를 국제공조와 국제협력의 틀에서 하는 것이 어떤 효력을 발휘할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진행돼 온 것과는 다른 시도다.
가령 북미관계가 정상화되는 것이 남북관계를 순조롭게 하는데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긴 하겠지만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남북관계의 틀을 보다 강화하고 오히려 남북관계를 통해서 국제관계를 어떻게 개선해나갈 수 있겠는가하는 것도 현 정부의 또 다른 과제가 될 수 있다.
현 정부에 기대할 수 있겠나?
남북문제는 정부차원을 넘어서 바라보고 다뤄야 하는 것이다.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는 수십 년 동안 지속된 과제이고, 앞으로도 상당한 기간을 두고 해소시켜 나가야할 과제이다. 현 정부가 어떻게 하는가에 집착하지 말고, 정말 우리 국민과 국제사회가 이 문제를 어떻게 보는가,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공존의 가치와 방법, 실천의 궁극적인 목표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통일을 전제하지 않고는 평화가 성립될 수 없다고 본다. 궁극적 목표는 통일이다. 어떤 형태의 통일이 되는가의 문제인데, 누차 얘기했지만 단순히 정부의 통합, 국경의 통합 등을 가지고 통일이라고 얘기하는 것보다 남북이 정말 한 민족으로서, 한 문화권으로서 어떻게 분단 이전의 역사를 계승하면서 새로운 평화의 역사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겠느냐가 더 중요한 과제가 아닐까.
그래서 통일에 몇 가지 단계가 있다고 본다. 김대중 정부 시절 '3단계 통일'과 같은 논리적인 이론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공존과 실천의 단계라고 본다. 그것을 위해 필요한 것이 두 가지 있다. 첫째, 화해의 역사를 만들어야 하고 역사의 화해를 만들어야 한다.
과거의 전쟁, 냉전시대의 갈등, 대립 등을 어떻게 해소해낼 수 있는가 모색해야 한다. 둘째, 교류협력의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 처음엔 사람들이 교류하다가 물자가 교류 되고, 물자를 나르는 수송수단이 오가고 그 토대 위에 협력 사업들을 하기 시작했다. 이것을 어느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가의 문제다.
교류협력사업의 측면에서 볼 때 현재 1단계를 겨우 지나가고 있다.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모두 상당히 취약한 구조다. 취약한 구조라는 것은 결국 신뢰와 소통의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문제를 얼마나 확고부동한 교류협력의 관계로 만들어 가기 위해 구체적으로 작동하는 소통의 틀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작년 정상회담과 총리회담 때 만들어낸 대화의 구조가 작동이 돼야 한다는 말이다.
90년 대 KNCC 통일·선교위원장을 역임하셨다. 종교, 특히 기독교와 교회가 대화와 소통을 위해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좋은 세력이라고 볼 수 있을 거 같다. 대화와 소통 위해 교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데 요새 보수교회의 모습은 오히려 창구를 닫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우려된다.
한국교회가 그동안 대북관계를 해 옴에 있어서 인도적 지원과 교회와 신학교에 대한 지원, 그리고 복음화의 연장선에서 교회개척을 위해 노력해왔다. 현 단계에서는 교회가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교회의 역할'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스스로 찾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직접 경험해보니 우리들 자체의 변화가 없이는 한반도 평화라는 문제에 접근해 나가기가 어렵다. 다시 말해 분단이나 냉전 등 교회가 그동안 갖고 있던 남북관계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지 않으면 새로운 게 들어올 수 없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부어야 하는데 교회 안에 평화와 통일에 관한한 새 술도 새 부대도 없다. 현재 지원사업에 머물고 있는 대북관계를 어떻게든 한 차원 더 높여가야 한다.
다음으로 우리 안에 북에 세우고자 하는 교회가 어떤 교회인가에 대해 합의를 만들어야 한다. 남한의 시스템 그대로 교파중심의 교회, 혹은 교회 중심의 교회로 간다면 또 하나의 불행이다. 경쟁과 파괴행위가 올 수 있다.
통합된 모델의 예로 '중국교회 모델'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국가와 교회가 일정한 관계를 갖고 그 틀에서 발전해나가는 단계가 북한에게 적절할 수 있다. 북한의 교회를 개척하든 지원하든 이런 관점에서 가야한다고 본다.
실제적으로 현재 교회의 대북채널은 조그련(조선그리스도연맹)이다. 조그련은 북한 당국이다. 그러나 우리는 감리교, 장로교, 순복음 등 개교단별로 활동하고 있다. 이러면 북한 교회와 접합하기가 어렵다. 우리 쪽에서 발상의 전환을 하고, 그 위에 남북관계를 새롭게 이해하고 북한 선교의 방향과 방법을 우리 내부에서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어려워도 해나가야한다. 인도의 경우 성공회, 감리교, 장로교 등 교파가 연합해 통합된 교단을 만들었다. 중국 교회 모델이건 인도교회 모델이건 국가와 교회가 일정한 정도의 연관을 갖고, 거기서 통합된 형태의 교회를 만들어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KNCC이상의 합의기구가 필요하다는 것인가?
그렇다. 대북선교의 통합기구가 북한당국과 적절히 대화하며 통합된 힘으로 북한 선교를 할 필요가 있다. 경험상 지원도 통합기구를 통해 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장관시절 대북사업 NGO통합을 통해 NGO들이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대북선교통합기구'가 정말 필요한 시대다. 대북 지원과 선교를 교파, 교회별로 경쟁하지 말고, 통합기구를 통해 교회설립과 신학기구 운영 등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한다. 지금처럼 감리교는 신학교육, 장로교는 교회 차지하는 형태로 가면 훗날 오히려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 될 것이다. 이 체제가 구축되지 않으면 북한 사회의 특성상 교회의 대북관계는 어렵다.
교회는 또 한반도 평화구축을 위해 전 세계적 네트워크를 통한 대화를 넓혀야 한다. 국제 관계를 통한 부분은 과거 7-80년대 활발하게 해오다 퇴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교회의 국제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90년대 이전에 교회가 활발히 해오다 DJ정부 이후 정부가 더 앞장서서 하니까 교회는 뒤에서 민간지원만 해온 것이 아닐까?.
비슷한 의견을 들은 적이 있다.
정부의 남북교류협력기금이 너무 크니까 교회나 민간기구가 모아서 지원해봤자 규모가 아주 형편없이 작으니까 오히려 민간단체 지원의욕을 떨어뜨린 결과를 가져온 게 아니냐는 것이다. 그렇지가 않다. 정부의 대북 지원 기금은 양곡과 비료 등 규모가 큰 사업이었다. 교회가 할 수 없는 규모다.
우리가 이제까지 북을 지원해 온 남북교류협력기금의 대부분이 쌀 차관과 비료지원이다. 규모가 너무 커서 민간이 할 수 없는 것들이다. 큰 규모는 정부가 하고 민간은 민간차원의 영역에서 지원을 계속 해야 한다. 그러나 민간지원의 목적과 방법은 냉정하게 평가하고 다듬을 필요가 있다.
한반도 평화통일에 대한 신학적인 연구도 심화 발전해야 한다. 예를 들어 각 신학대가 연합으로 '통일신학을 위한 연구모임'을 만들 수도 있다. 또는 한기총이나 KNCC가 프로젝트나 프로그램에 대한 협력을 구체적으로 할 수 있다고 본다. 대
북관계에 대한 정보를 서로 교환하고 어떡하면 효율적으로 협력해 갈 수 있고, 우리 내부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모색해야 한다. 장관 경험하면서 우리 내부의 변화가 절실함을 느꼈다. 생각해보라. 통일부장관을 친북좌파 세력으로 몰아버리면 일을 어떻게 해나갈 수 있겠는가?
한기총과 KNCC의 협력이 외적으로는 활성화되는 듯 보이나 내부적으로는 한걸음도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과거에는 북한 문제에 있어서 문익환 목사님과 같은 리더십이 있었다. 왜 현재는 교회에서 그런 리더십이 나오지 못하는가? 신부님이 그런 역할을 해주실 수 있지 않을지.
그 분들이 너무 위대했기 때문에...하하하. 그때 일하신 분들은 막힌 장벽을 허무는 리더십이었다. 지금은 과거와 다르다고 생각한다. 창조적으로 구체적인 대안을 만드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정부와 국민이 다로 있는 게 아니다. 정부는 국민의 뜻을 따르는 것이다. 국민이 강렬하게 요구하고 원하면 정부는 따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도 폄하하거나 너무 성급하게 평가할 일이 아니다. 국민이 이해하고 원하는 것들을 정부에 제대로 요구하면 그것이 반영될 수 있는 게 민주주의 아닌가. 그것을 따라가는 것이 민주정부다. 인내를 가지고서라도 그렇게 가야한다.
누구를 비판하기보다 미래지향적으로 가야할 목표가 있다면 이를 위한 구체적인 안을 교회가 만들어가야 한다. 찬송가 중에도 통일이나 평화를 위한 곡이 없다. 그런 곡도 교회가 만들어 내야 하지 않을까. 찬송가 안에 제국주의, 승리주의 시각이 지배적이다. 같이 잘 살자는 내용이 부족하다.
신부님의 생각들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활동 방향은 있으신지?
지금 생각으로는 교회 내에 이런 담론을 활성화시켜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안타깝지만 기성교회 대중들은 이런 담론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나는 현재의 교착상태는 일시적인 현상이고 역사적으로 건너가야만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어둠이 깊으면 새벽이 오는 거다.
예를 들어 북한의 핵실험이 북미대화로 연결되지 않았는가. 거기서 새로운 출발점을 만들지 않았는가. 경제에서 바닥을 친다고 표현하듯이 희망은 맨 밑바닥에서 다시 탄생되는 것이다. 현재 교회에 희망이 없다고 했을 때 거기서부터 희망을 만들어가는 것이 교회의 책임이다.
오히려 지금 이 시대가 결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1997년 남북 교류하던 인원이 1000명이 조금 넘었다. 그런데 2007년 말 16만 명으로 늘었다. 금강산관객을 뺀 숫자다. 160배가 늘어난 것이다. 누가 상상을 했겠는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분명한 것은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길을 밖에서 찾지 말고 우리 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담 : 이승균 편집장 seunglee@newsnjo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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