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인조 34권, 15년(1637 정축 / 명 숭정(崇禎) 10년) 5월 26일(계사) 1번째기사
비국의 건의로 좌영장 최진립 등에게 표창하게 하다.
비국이 아뢰기를,
❝정세규가 (鄭世規)가 험천(險川)에서 전투를 치룰 때 좌영장 최진립(崔震立), 우영장 심일민(沈逸民), 별장 황박(黃珀), 중군 이건(李楗), 참모관 이경선(李慶善), 방량차사원(放粮差使員) 이상재(李尙載), 군기차사원 김홍익(金弘翼), 심약(審藥) 이시량(李時亮)을 대동하고 갔는데, 심일민은 힘껏 싸우다 화살에 맞아 죽을 뻔하여 벗어났고, 최진립 이하는 모두 진중에서 죽었습니다.
해조에게 표창하고 증직하게 하고 심일민은 관직을 상으로 주게 하소서.❞
하니, 상이 따랐다.
[태백산사고본] 34책 34권 60장 B면
[영인본] 34책 691면
[분류] *인사-관리(管理) / *군사-전쟁(戰爭) / *외교-야(野)
-------------------------------------------------------------------------------------------------------------------------------------
[원문]
仁祖 34卷, 15年(1637 丁丑 / 명 숭정(崇禎) 10年) 5月 26日(癸巳) 1번째기사
비국의 건의로 좌영장 최진립 등에게 표창하게 하다
○癸巳/備局以鄭世規險川赴戰時,左營將崔震立、右營將沈逸民、別將黃珀、中軍李楗、參謀官李慶善、放糧差使員李尙載、軍器差使員金弘翼、審藥李時亮帶去, 而沈逸民力戰中矢,幾死得脫, 崔震立以下, 皆死於陣上, 請令該曹褒贈, 沈逸民賞職, 上從之。
[태백산사고본] 34책 34권 60장 B면
[영인본] 34책 691면
[분류] ◇인사 ~ 관리(管理) ◇ 군사 ~ 전쟁(戰爭) ◇외교 ~ 야(野)
-------------------------------------------------------------------------------------------------------------------------------------
●위의 조선 왕조 실록에 수록된 내용은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당시 인조께서 남한산성에
몽진해 계실 때 충청감사 정세규(鄭世規)가 이끄는 왕의 근왕병으로 광주 검천(險川:오늘날 성남시 분당구 금곡동 부근) 전투에서 적과 용감히 싸우다. 전사한 신하들에게 영조께서 표창한 기록 이다.
◈최진립(崔震立 : 1568~1636)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본관은 경주(慶州)이며.자는 사건(士建), 호는 잠와(潛窩). 신보(臣輔)의 아들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때 동생 계종(繼宗)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1594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부장을 제수 받았으나 병으로 사직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 때 결사대 수백명을 인솔하고 서생포(西生浦)의 적을 격멸한 데 이어 양호(楊鎬)·권율(權慄)과함께 도산(島山)에서 대승하였다.
1600년 여도만호 겸 선전관(呂島萬戶兼宣傳官)에 제수되었으나 취임하지 않고, 1607년 도총도사에 제수되자 비로소 관직에 나갔다. 뒤에 울산에 유배되었으나 인조반정 후 사면되어 가덕첨사(加德僉使)를 제수 받았다. 경흥부사. 공조참판을 거쳐 1630년(인조 8), 경기수사로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를 겸하였다.
1634년 전라수사를 거쳐서 1636년 공주영장으로 병자호란을 맞자 감사 정세규(鄭世規)를 따라 참전하여 용인 검천(險川)에 이르러 청군을 만나 끝까지 싸우다 전사하였다.
저서로는《정무공기실 貞武公紀實》 2권이 있다.
1637년 병조판서에 추증되고, 1647년에 청백리(淸白吏)에 녹선되었다.
경주의 숭렬사(崇烈祠), 경원의 충렬사(忠烈祠)에 제향 되었으며, 시호는 정무(貞武)이고 장군으로 부터 12대 약 300여 년간 만석 집으로 부를 이어온 유명한 경주 교동의 최 부자 집이 바로 이집이고, 동학 창시자 최제우 또한 최진립 장군의 후손이다.
◈이경선『李慶善, 1600년(선조 33) ~ 1636년(인조 14)』
공의 초휘(初諱)는 경징(慶徵)이요. 자(字)는 군선(君善), 호(號)는 남포(藍浦), 충익공 벽오 이시발(忠翼公 碧梧 李時發)의 아들로 경자(庚子) 1600년(선조 33) 5월 초 2일 태어나, 1624년(인조 2)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 진사(進士)가 되고, 1633년(인조 11) 11월 17일 계유 식년방(癸酉 式年謗) 33인중 10등(을과 7등)으로 문과급제(文科及弟)하였다.
그 후 박사(博士), 저작(著作), 성균관 전적(成均館 典籍), 호조좌랑(戶曺佐郞)을 역임하고, 1636년(인조 14) 1월에 남포현감(藍浦縣監)겸, 홍주진관 병마절제사(洪州鎭管 兵馬節制使)가 되어, 그해 12월 병자호란이 발발, 인조가 남한산성(南山城)에 몽진해 있을시, 충청감사 정세규(鄭世規)가 이끄는 왕의 근왕병으로 경기도 광주 검천 전투(京畿道 廣州 險川 戰鬪)에 참가, 장렬히 순절하니, 향년 36세였고, 통정대부 예조참의(通政大夫 禮曺參議)에 증직(贈職)되었다.
묘(墓)는 충북 진천군 진천읍 산척리 산직마을의 신좌원(申坐園)에 있고, 묘갈(墓碣)과 정려문(旌閭門)이 있다.
◈심일민(沈逸民) : 자료 조사 추가요망
본관 청송. 1600~? 자 정국(正國). 호 성재(惺齋). 시조의 12세손. 수찬 안평의 넷째 아들로 지기(志氣)가 강개하였고, 충의교위(忠毅校尉)를 지냈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창의하여 남한산성의 광을 도우려 출병하였으나 도중에서 강화의 소식을 듣고 통곡 귀항하였다. 아내는 현풍곽씨다. <全南 咸平文化院資料>
◈황박(黃珀,1573-1636)
본관 성주(星州). 충남 직산(稷山) 출생. 광해군 때 무과에 급제, 선전관이 되고, 1621년(광해군 13) 명(明)나라 사신이 왔다가 돌아갈 때 마침 후금(後金:淸)이 선양[瀋陽]과 랴오양[遼陽]을 함락하여 육로(陸路)가 막히자 자원하여 해로(海路)로 명나라 등주(登州) 까지 전송하고 돌아 왔다.
1634년(인조 12) 의주부윤(義州府尹)을 지낸 뒤 중추부동지사(中樞府同知事)에 이르러 고령(高齡)으로 퇴관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충청도관찰사 정세규(鄭世規) 휘하에 종군, 용인(龍仁)전투에서 적군에 포위되어 분전하다가 얼굴에 화살을 맞고 전사하였다. 숙종 때 그 부자(父子)의 정문(旌門)이 고향에 세워지고, 공조판서에 추증되었다.
◈ 이건(李楗) : 자료조사후 기록 예정.
미상∼1636년(인조 14). 조선 중기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양녕대군(讓寧大君) 이제(李褆)의 8세손이다. 무과에 응시하여 급제하였고 관직은 현감(縣監)에 이르렀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동리(東里) 정세규(鄭世規)를 따라 전쟁에 참가하였다.
당시 정세규 휘하에서 중군(中軍)을 맡아서 험천(險川) 전투에 참전하였지만, 전세가 불리해지자 그는 노비에게 말 한 필을 건네며, 나라를 등지가 살아가기보다는 차라리 전장에서 죽겠다는 말을 집에 전하게 하고 전장에서 순국하였다.
1637년(인조 15)에 공적을 인정받아, 정려(旌閭)를 하사받았고, 병조참의(兵曹參議)에 추증되었다.
◈ 이상재『李尙載 : 1607년(선조 40)∼1636년(인조 14)』
본관은 부평(富平). 자는 문거(文擧). 군수 이덕일(李德一)의 아들이며, 문양부원군(文陽府院君) 이자신(李自新)의 외손자이다. 1630년(인조 8) 진사가 되고, 1633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승문원에 등용되어 저작에 올랐다.
1636년 금정도찰방(金井道察訪)이 되었다.
이해 겨울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충청도관찰사 정세규(鄭世規)의 종사관으로 출정하여 인조가 피난한 남한산성을 향하여 진군하다가 험천(險川, 지금의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에서 적의 협공을 받아 싸우다 화살에 맞아 전사하였다.
문장과 글씨에 뛰어나 중국 사신을 놀라게 하였고, 사후에 교리에 추증되었다.
◈ 김홍익『金弘翼, 1581년(선조 14)∼1636년(인조 14)』
1581(선조 14)∼1636(인조 14).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익지(翼之), 호는 묵재(默齋). 아버지는 찰방 적(襀)이며, 어머니는 화순최씨(和順崔氏)로 좌윤 원지(遠之)의 딸이다.
1614년(광해군 6) 사마시에 합격하고, 1628년(인조 6) 의금부도사, 1630년 장악원직장(掌樂院直長), 1631년 감찰, 1632년 공조좌랑을 거쳐 연산현감(連山縣監)이 되었다. 청렴결백하고 정치의 화평에 힘써서 군이 태평하였다고 한다.
1636년 병자호란 때 관찰사 정세규(鄭世規)가 군병을 모집하자 80여세의 어버이가 계셨으나, 군기차사원(軍器差使員)으로 2,400여명을 인솔하고 수원산성에 이르러 감찰사와 논의하고, 남한산성으로 가던 중 검천(險川)에 이르러 적병과 분전하다가 순절하였다.
좌승지에 증직되고, 영조 때 정려를 받았으며, 뒤에 이조판서에 증직되었다.
저서로는 ≪묵재실기 默齋實紀≫ 3권1책이 있다. 시호는 충민(忠愍)이다.
≪참고문헌≫ 默齋實紀
◈ 이시량(李時亮)
본관은 태안(泰安), 임자(壬子) 1612년(광해군 4)生, 계사(計士=조선 시대, 호조(戶曹)에 딸려 토지, 호구, 세금 따위에 관한 통계 사무를 맡아보는 종팔품(從八品)의 벼슬)를 지낸, 이수천(李壽千)의 증손이고, 조부는 의과(醫科)의 혜민서주부[惠民署主簿=조선시대, 무료로 가난한 백성들의 병을 치료하고 여자들에게 침술을 가르치던 관아의 종육품(從六品)의 낭관(郞官)]를 지낸 이태인(李泰仁)이고, 아버지 또한 혜민서주부(惠民署主簿)를 지낸 이파(李坡)이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충청도 감사 정세규(鄭世規)가 이끄는 근왕병의 심약(審藥=조선 시대, 궁중에 바치는 각 지방의 약재들을 심사하고 감독하기 위해서 각 도에 파견하던 종구품의 벼슬)으로 출전 경기도 광주 험천(險川) 전투에서 전사했다.
--------------------------------------------------------------------------------------------------------------------------------------
■ 병자호란 순절신(丙子胡亂殉節臣)
1636년(인조 14) 12월부터 이듬해 1월 까지 청나라의 제2차 침입으로 일어난 전쟁 순절신. 83명
●순절 제신(殉節諸臣)
◇홍익한(洪翼漢) : 호는 화포(花浦), 시호는 충정(忠正).
◇오달제(吳達濟) : 호는 추담(秋潭), 시호는 충열(忠烈).
◇윤 집(尹 集) : 호는 임계(林溪), 시호는 충정(忠貞).
◇이경선(李慶善) : 남포현감(藍浦縣監). 본관은 경주(慶州) 증 예조참의(贈禮曹參議).
◇최진립(崔震立) : 시호는 정무(貞武), 참판(參判).
◇김홍익(金弘翼) : 연산현감(連山縣監).
◇이상재(李尙載) : 금정찰방(金井察訪).
◇이의배(李義培) : 부사(府使).
◇신성립(申誠立) : 본관은 평산(平山), 별장(別將), 시호는 충목(忠穆).
◇민 영(閔 栐) : 진주병사(晋州兵使), 시호는 충장(忠壯).
◇지여해(池如海) : 별장(別將).
◇허 완(許 完) : 시호는 충장(忠壯).
◇이원길(李元吉) : 군관(軍官).
◇선세강(宣世綱) : 안동영장(安東營將).
◇심자광(沈自光) : 훈련첨정(訓鍊僉正).
◇이상급(李尙汲) : 참의.
◇한진영(韓震英) : 남우후(南虞侯).
◇배명순(裵命純) : 덕원부사(德源府使).
◇송 침(宋 沉) : 홍원현감(洪原縣監).
◇홍명구(洪命耉) : 본관은 남양(南陽), 평안도관찰사(平安道觀察使).
◇허 로(許 輅) : 순안현감(順安縣監).
◇이행진(李行進) : 정랑.
◇황일호(黃一皓) : 호는 지소(芝所), 시호는 충렬(忠烈), 황신(黃愼)의 아들.
◇윤 계(尹 棨) : 시호는 충간(忠簡), 남양부사(南陽府使).
◇황선신(黃善身) : 중군(中軍).
◇강흥업(姜興業) : 천총 훈첨(千摠 訓僉).
◇정재신(鄭再新) : 초관(哨官).
◇구일원(具一元) : 천총.
◇김상용(金尙容) : 호는 선원(仙源).
◇이세영(李世寧) : 시호는 충열(忠烈), 상원군(祥原君).
◇심 현(沈 誢) : 시호는 충열(忠烈), 도정(都正).
◇박 준(朴 駿) : 자는 경일(景逸), 호는 수죽당(修竹堂), 훈련원봉사(訓鍊院奉事).
◇권순장(權順長) : 시호는 충열(忠烈), 별좌(別坐).
◇김익겸(金益兼) : 시호는 충정(忠正), 본관은 광산(光山), 생원.
◇심 숙(沈 諔) : 심현(沈言見)의 사촌아우.
◇김수남(金秀南) : 본관은 광주(光州), 좌랑(佐郞).
◇홍명형(洪命亨) : 시호는 의열(義烈), 본관은 남양(南陽), 승지(承旨).
◇송시영(宋時榮) : 호는 야은(野隱), 시호는 충현(忠顯), 주부(主簿).
◇이시직(李時稷) : 시호는 충정(忠正), 봉상(奉常).
◇윤 전(尹 烇) : 호는 후촌(後村), 시호는 충헌(忠憲), 필선(弼善).
◇강위빙(姜渭聘) : 익위(翊衛).
◇이상길(李尙吉) : 호는 동천(東川), 시호는 충숙(忠肅), 판서.
◇홍처약(洪處約) : 홍명형(洪命亨)의 아들.
◇송 심(宋 諶) : 현감.
◇김 서(金 叙)
◇조정익(趙廷翼) : 시호는 충숙(忠肅).
◇차예량(車禮亮)
◇정백형(鄭百亨) : 정백창(鄭百昌)의 아우, 장령(掌令).
◇이돈오(李惇五) : 시호는 충현(忠顯), 익위(翊衛).
◇정효성(鄭孝誠)
◇이돈서(李惇叙) : 이돈오(李惇五)의 아우.
◇이가상(李嘉相) : 본관은 연안(延安), 이상급(李尙汲)의 아우.
◇이사규(李士珪) : 첨정(僉正).
◇민 성(閔 垶) : 호는 용암(龍岩).
◇민지침(閔之針) : 민성(閔垶)의 아들.
◇민 지(閔 之) : 민성(閔垶)의 아들.
◇민지익(閔之釴) : 민성(閔垶)의 아들.
◇유 질(柳 秩) : 철원부사(鐵原府使).
◇이원규(李元揆)
◇이중규(李重揆) : 이민영(李敏永)의 아들.
◇이상규(李尙揆) : 이민구(李敏求)의 아들.
◇이 참(李 參) : 파총(把摠).
◇이부후(李副後) : 초관(哨官).
◇김득남(金得男) : 철관첨사(鐵串僉使).
◇안몽상(安夢祥) : 파총(把摠).
◇이광원(李光遠) : 기패관(旗牌官).
◇고의겸(高義謙) : 교사(敎師).
◇서언길(徐彦吉) : 무학(武學).
◇차명세(車命世) : 정병(正兵).
◇황대곤(黃大坤) : 파총.
◇송영춘(宋榮春) : 수군(水軍).
◇윤 성(尹 城) : 진사.
◇장후건(張厚健)
◇안극성(安克誠) : 훈련부정(訓鍊副正).
◇이 령(李 翎)
◇정 수(鄭 洙) : 현감.
◇이국화(李菊華)
◇신 오(申 澳) : 본관은 평산(平山), 주부(主簿).
◇신천남(申天男)
◇송해수(宋海壽)
◇김 언(金 琂) : 부사.
◇진구주(陳九疇)
◇남무성(南武星)
<끝>
'■ 인물 > 조선시대 인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충당 이의립 - 경주이씨 교감공파 (0) | 2009.01.21 |
---|---|
정탁(鄭琢) (0) | 2008.09.03 |
최진립(崔震立) (0) | 2008.08.31 |
구국의 지도자 서애 류성룡(西厓 柳成龍) (0) | 2008.07.02 |
조선조 역대 영의정 (0) | 2008.06.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