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成均進士李公墓誌銘 ◇국당공후 정순공파 서암 신정하 찬(恕菴 申靖夏 撰) (1680~1715) 지난 광해조(光海朝) 때에 간옹(艮翁) 이공(李公)이 직언(直言)을 했다가 해도(海島)로 쫓겨났는데, 그의 맑은 명성과 곧은 절조가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이목(耳目)에 빛나고 있다. 그런데 간옹의 손자인 진사 병(炳)이 기사년의 화(禍)를 당하여 화색(火色)이 매우 치성한 가운데 서울 지역의 선비 수백 인을 거느리고 대궐에 엎드려 상소하여 율곡(栗谷)ㆍ우계(牛溪) 두 선생이 무함받은 것을 극력 변호했다가 죄에 걸려 단천(端川)으로 유배되었으니, 사문(斯文)을 보위하고 세도(世道)를 다행스럽게 한 것이 대단하였다. 그래서 사대부(士大夫)들이 공을 아는 이건, 모르는 이건 간에 모두 훌륭하게 여겨 감탄하면서「명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