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得胤 3

서계 이득윤선생 묘

↑서계 이득윤선생 묘(西溪 李得胤先生墓) ↑서계 이득윤선생 묘의 후경 ↑옥화대에 있는 옥화서원(玉華書院) ◈소재지 : 충청북도 청원군 미원면 옥화리 ◈배향인물 : 1)이득윤(李得胤). 2)윤승임(尹昇任). 3)박곤원(朴坤元). 4)윤사석(尹師晳) ◈창건연도: 1717년(숙종 42) ◈향 사 일: 음력 3월 중정 ◈연혁 옥화서원은 1717년(숙종 42)에 괴산군수(槐山郡守) 서계 이득윤(西溪 李得胤), 주일재 윤승임(主一齋 尹昇任), 옥계 박곤원(玉溪 朴坤元), 사헌집의(司憲執義) 만둔암(晩遯庵) 윤사석(尹師晳)의 위패를 봉안하고 세운 사당이다. 1871년(고종 8) 서원 훼철령으로 철폐되었다가 1989년에 다시 세우고 매년 음력 3월 중정일에 향사하고 있다. ◈배향인물 1)주벽 - 이득윤(李得胤, 155..

答 李養久 - 西溪 李得胤

西溪先生文集卷之二 >書 答李養久 時發 ○戊申九月 秋夕便傳。緣勢未答。迨恨迨恨。霜寒不審廵候何如。老年悲秋之感。例多於少壯。而况今懷人之思兼之乎。尤增欝悒也。德胤。幸保舊操。未有新得。祗見聵聵。何容喙喙。但初秋間。掉脫塵冗。往棲落影山寺。僅月餘日。仍尋歡喜磐石。約與金庚黃戚輩。遊賞後穎高棲。則溪山淸絶之勝。雖謂山東第一可也。留宿數日。徘徊不忍去。若於此時。與主人翁共對此境界。則想添一格景象。而逖矣西土。奈如之何。然以看竹之高趣言之。固無妨於吾等之淸游。而薄領叢中。若得聞之。慙愧華山雲之句。恐其重發於高明也。病拙自見貴庄以來。尤厭世氛。略倣▦▦故事。謀卜於玉華曠▦。其爲明快灑落。固未敢望於仙庄。在此上流。水道之的源。分明迴抱淸露。在外之雜氣不入。宜乎晩節之所盤旋。故明春。欲營數間精舍。而連値凶歉。啼飢之患太甚。罔知攸措。左右其可以能賞此意。特助誅茅之淸債乎。鄙志之成不成。山契之參不參..

서계 이득윤선생 문인록/총47인

■서계 이득윤선생 문인록 (西溪 李得胤先生文人錄) 1553년(명종 8 - 1630년(인조 8)때인, 조선중기의 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字)는 극흠(克欽) 호(號)는 서계(西溪) 고려말 문신 제현(齊賢)의 후손, 서기(徐起)와 박지화(朴枝華)에게 수학하고 1588년(선조 21)진사가 되고1600년 왕자사부(王子師傅), 이어서 형조좌랑,과 의성 현령을 지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선공감정(繕工監正)이 되고, 1624년(인조 2)괴산군수로 있으때 이괄(李适)의 난으로 론란한 민심을 수습하고 관기(官紀)를 바로잡아 선정을 베풀었다. 음악에 남다른 관심을 두어 고향에 머무르는 동안 거문고에 관련된 명(銘), 부(賦), 기(記), 시(詩), 서(書), 악보, 고금금보(古今琴譜) 등을 집대성하여 《현금동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