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원부에 새로 둔 제용재의 기[南原府新置濟用財記] 목은 이색 (牧隱 李穡 撰) 금상(今上) 8년 봄에 간관(諫官)인 익재 시중(益齋 侍中)의 손자(孫子)가 남원부(南原府)로 쫓겨나간 지 일년이 채 안 되어, 선정(善政)을 행한 업적이 남쪽지방의 수령 중에서 으뜸을 차지하였으므로, 내가 그에 대한 일을 써서 순리(循吏)의 열전(列傳)에 붙이려고 한 지가 오래되었다. 국자 학유(國子學諭)인 양이시군(楊君以時君)은 남원 출신인데, 행동거지가 신중하고 성실하며 말하는 것도 미더웠다. 하루는 나에게 와서 말하기를「우리 원님의 정사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깊이 감동하고 있으니, 굳이 금석(金石)에 새겨 놓지 않더라도 그 자취가 아주 없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만, 새로 설치한제용재(濟用財)의 일만큼은 쉽게 무너져 버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