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李冑) 1468년(세조 14)∼1504년(연산 10)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고성(固城). 자(字)는 주지(胄之), 호(號)는 망헌(忘軒). 안동(安東)사람이다. 그는 좌의정 이원(李原)의 증손으로, 조부(祖父)는 현감 이증(李增)이고,1468년(세조 14) 아버지 현감 이평(李評)과 어머니 양천(陽川) 허(許)씨[허추(許樞)의 딸] 사이에서 차남(次男)으로 태어났으며. 배위(配位)는 전주(全州) 이해(李偕)의 딸이다. 1488년(성종 19)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로 벼슬살이를 시작하여, 정언(正言)을 지냈으며, 선비들이 영예롭게 생각하는 사가독서에 천거될 정도로 잘 나갔지만 언관으로서 지나칠 정도로 강직한 발언도 스슴치 않았다 한다. 연산군은「이주(李冑)등은 분명 나를 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