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 고려국 성근익찬 경절공신 중대광 성산군 증시 문열공 이공 묘지명 (有元 高麗國 誠勤翊贊 勁節功臣 重大匡 星山君 贈諡 文烈公 李公 墓誌銘) 이제현 찬(李齊賢 撰) 예로부터 묘소에는 지석(誌石)이 있어 왔다. 세대가 이미 멀어지면 혹 묘소가 무너질 수는 있으나 그 지석을 보면 누구를 위하여 간직해 둔 것인 줄을 알게 되니, 진실로 차마 폐할 수 없는 것이며, 사군자(士君子)가 그 어버이를 장사할 적에 뒤로 미룰 수 없는 것이다. 성산군 이공이 졸한 지 1년이 넘어서 내가 비로소 공을 위하여 묘지명을 찬술하는 것은, 대개 연유(緣由)가 있어서이다. 조적(曹頔)의 변란 때에 천자가 영릉(永陵-고려 충혜왕의 묘호)을 불러 입근(入覲)하게 하였는데, 승상(丞相) 백안(伯顔)이 숙감(宿憾)을 품고 영릉으로 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