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인행(李仁行) 1758년(영조 34)∼1833년(순조 33),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보(眞寶). 자는 공택(公宅), 호는 만문재(晩聞齋)· 일성(日省)· 신야(新野). 영천출신. 해(瀣)의 후손으로, 관섭(觀燮)의 아들이다. 경사(經史)에 두루 통하여 정조의 친명으로 성균관에 거재(居齋)하기도 하였다. 1790년(정조 14)에 응제대책(應製對策)으로 인하여 온릉참봉(溫陵參奉)에 발탁되었고, 벼슬이 세자익위사익위(世子翊衛司翊衛)에 이르렀다. 서연(書筵)에도 입시하여 진강하였는데, 동료들로부터 진강관(眞講官)이라는 칭송을 들었다. 만년까지 책을 놓지 않았는데, 특히 《심경》·《근사록》을 아꼈다 한다. 저서로 《신야문집(新野文集》이 있다. [참고문헌] 宗齋集.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