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이 2

月下庭梧盡(월하정오진) - 황진이(黃眞伊)

詩題 : 月下庭梧盡(월하정오진) (달빛어린 뜰에는 오동잎 지고) 月下庭梧盡(월하정오진)/달빛어린 뜰에는 오동잎 지고 霜中野菊黃(상중야국황)/서리속에 들국화 시들어 가네. 樓高天一尺(누고천일척)/누대는 높아서 하늘에 닿고 相盞醉無限(상잔취무한)/오가는 술잔은 취하여도 끝이 없구나. 流水和琴冷(유수화금냉)/차가운 물소리는 거문고 소리 梅花入笛香(매화입적향)/피리에 감겨드는 그윽한 매화 향기 今日相別後(금일상별후)/오늘 우리가 헤어진 후면 憶君碧波長(억군벽파장)/그리움은 강물처럼 한이 없으리. 황진이(黃眞伊) ↑월하정인(月下情人) - 신윤복의 1805년 작

연암 박지원선생 묘(燕巖 朴趾源先生墓),

■연암 박지원 묘(燕巖 朴趾源 墓), 1737년「영조 13) 3월 5일(음력 2월 5일)∼1805년(순조 5). 12월 10일(음력 10월 20일)」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미중(美仲) 또는 중미(仲美), 호는 연암(燕巖) 또는 연상(煙湘)· 열상외사(洌上外史). 할아버지는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 필균(弼均)이고, 아버지는 사유(師愈)이며, 어머니는 함평 이씨(咸平李氏) 창원(昌遠)의 딸이다. 황해북도 개성시 은덕동의 황토고개 남쪽 기슭에 있는 그의 무덤이다. 일제의 탄압말살정책으로 그의 무덤도 행처를 모르다가 1959년에 묘지명이 발견되어 처음으로 알려졌으며 2011년도에 북측에서 다시 조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