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처사 덕산 황공 기로지 묘갈명 (孤山處士 德山 黃公 耆老之 墓碣銘) ◇생졸년 : 황기로『黃耆老. 1521년(중종 16)~1567년(명종 22)』 자(字)는 태수(台叟)인데, 고려 첨의중찬(僉議中贊) 광적(光迪)의 12세손이다. 선고(先考)는 이름이 이옥(李沃)으로 별좌(別坐)를 지냈고, 조부는 이름이 필(㻶)로 경주부윤(慶州府尹)을 지냈으며, 증조부는 이름이 귀수(龜壽)로 참판을 추증받았고, 고조부는 이름이 정문(正文)으로 참판을 추증받았다. 공은 필법(筆法)으로 천하에 이름을 떨쳤는데, 그 초서(草書)는 더욱 기이하였으므로, 중국 사람들이 완호(玩好)하여 보물로 여기면서 이르기를 “왕희지(王羲之) 이후의 제 일인자이다.”라고 한다. 그 필적(筆跡)을 얻고자 비단을 싣고 문전에 이르는 자가 매일 천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