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곡 이경억 간찰 2

이경억(李慶億) 간찰

↑크기 : 45㎝(가로) x 25㎝(세로) ● 이경억(李慶億) 1620(광해군 12)∼1673(현종 14).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석이(錫而), 호는 화곡(華谷). 서울출생. 아버지는 판서 시발(時發)이며, 어머니는 승지 신응거(申應榘)의 딸이다. 7세에 아버지가 죽고 편모슬하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재지가 출중하여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수재였다. 1644년(인조 22) 25세의 젊은 나이로 정시문과에 장원하여 예조와 병조의 좌랑을 역임하고 세자시강원사서가 되었다. 1672년에는 우의정과 좌의정을 지냈다. 천성이 밖으로는 엄격하였으나 내부로는 따스한 인정이 넘쳤다. 수염이 길고 풍채가 아름다워 일견 미남자였으나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는 명백하였으며 다른 사람들의 사의가 간..

이경억, 이경휘, 이경일, 이유원, 이유승, 이상설 간찰첩(簡札帖)

■ 간찰(簡札) 본 첩(帖)에는 경주이씨(慶州李氏)가의 명인(名人) 李慶億, 李慶徽, 李敬一, 李錫奎 2 장, 李裕元, 李裕承, 李顯稷, 李相卨 등의 9장으로 구성된 간찰(簡札)첩 내용의 일부이다. ↑화곡 이경억 간찰『華谷 李慶億, 1620(광해12)~1673(현종14)』 ↑춘전 이경휘 간찰『春田 李慶徽, 1617(광해9)~1669(현종10)』 ↑청헌 이경일 간찰『聽軒 李敬一, 1734(영조10)-1820(순조20)』 ↑귤산 이유원 간찰『橘山 李裕元, 1814(순조14)-1888(고종25)』 ↑이유승『李裕承, 1835년(헌종 1년)- 1907년(순종 1/융희 1)』 ↑보재 이상설선생 간찰『溥齋 李相卨, 1870.12. 7(고종7)-1917. 3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