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항(崔沆) 2

경주최씨 인물록(慶州崔氏 人物錄)

■ 경주최씨 인물록(慶州崔氏人物錄) 대종(大宗)인 경주최씨(慶州崔氏)는 신라의 석학 최치원(崔致遠)을 시조로 한다. 그는 한문학의 조종(祖宗)으로서 절세의 명문으로 알려져 있으며, 한시문집으로 《계원필경(桂苑筆耕)》(20권) 등의 명저를 남겼다. 경주최씨는 신라 말에 명성을 떨쳤고, 고려시대에 들어와서도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 성종 때의 승로(承老 :수문하시중), 현종 때의 항(沆 :평장사), 충숙왕 때의 해(瀣), 명종 때의 여해(汝諧) 등을 들 수 있다. 경주최씨의 세계(世系)는 최치원을 시조로 26파로 나뉘는데, 그 중 관가정공파(觀稼亭公派)· 광정공파(匡靖公派)· 정랑공파(正郞公派)· 사성공파(司成公派)· 화숙공파(和淑公派)· 충렬공파(忠烈公派) 등 6대파가 주축을 이룬다. 이들 6파 가운데서 ..

최항(崔沆)/고려 무신정권의 집권자

■ 최항(崔沆) [생졸년] : 1209년(희종 5)∼1257년(고종 44). 고려무신정권의 집권자로. 본관은 우봉(牛峰). 초명은 최만전(崔萬全)이다. 증조부는 최원(崔元)이고, 조부는 최씨 무신정권을 시작한 최충헌(崔忠獻)이며, 아버지 최우(崔瑀)의 서자이다. 외조부는 사홍기(史洪紀)(이다.창기(娼妓) 서련방(瑞蓮房)의 소생으로 처음에 송광사(松廣寺)에서 중이 되어 선사(禪師)가 되었다가 쌍봉사(雙峰寺)로 옮긴 뒤, 무뢰승(無賴僧)을 모아 문도(門徒)를 삼고 식화(殖貨)를 일삼다가 1248년(고종 35)에 아버지의 병으로 환속하여 좌우위상호군‧ 호부상서가 되었으며, 아버지의 명으로 임익(任翊)으로부터 글을 배우고 권위(權韙)로부터 예(禮)를 익혔다. 뒤이어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가 되고 아버지로 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