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제공 묘 2

채제공(蔡濟恭)

■ 채제공(蔡濟恭) 1720(숙종 46)~ 1799(정조 23).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평강(平康). 자는 백규(伯規), 호는 번암(樊巖)·번옹(樊翁). 효종 때 이조판서·대제학을 지낸 유후(裕後)의 방계 5대손이며, 시상(時祥)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성윤(成胤)이고, 아버지는 지중추부사 응일(膺一)이다. 어머니는 이만성(李萬成)의 딸이다. 홍주 출생. 1735년(영조 11) 15세로 향시에 급제한 뒤 1743년 문과정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권지부정자에 임명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1748년 한림회권(翰林會圈) 때 영조의 탕평을 표방한 특명으로 선발되어 청요직인 예문관사관직을 거쳤다. 1751년에는 중인(中人)의 무덤이 있는 산을 탈취했다 하여 1년 이상 삼척에 유배되었다. 1753년에..

번암 채제공의 경륜과 충성심

역사의 땅, 사상의 고향 ㊶ 번암 채제공의 경륜과 충성심(上) 입력: 2008년 08월 22일 17:42:21 당쟁 소용돌이서 국정을 바로잡다 채제공의 죽음 사람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제대로 평가 받기가 어렵다. 운명하고 난 뒤, 관의 뚜껑을 덮고 나야만 그 사람에 대한 올바른 평가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 옛날부터 전해지는 이야기다. ↑번암 채제공의 73세 때의 초상화. 정조의 어진을 그렸던 당대의 화가 이명기의 솜씨다. |사진작가 황헌만 1720년에 태어나 80수를 누리고 1799년 초봄에 세상을 떠난 당대의 명재상이자 경륜 높은 정치가에다 시문에도 뛰어났던 채제공은 죽은 뒤에 훨씬 높은 평가를 받았던 인물임이 분명하다.채제공은 숙종 46년에 태어나 영조 11년인 1735년에 16세로 향시에 급제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