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석영(張錫英) 1851년(철종 2)∼1929년. 독립운동가· 유학자. 본관은 인동(仁同). 일명 석교(碩敎). 호는 회당(晦堂). 경상북도 칠곡 각산(角山) 출신,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후손, 장시표(張時杓)의 아들로 이진상(李震相)과 허유(許愈)의 문인이다. 1905년 일제가 무력으로 위협하여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고 국권을 박탈하자 통분하여 일제침략을 규탄하고 을사조약의 파기와 을사오적의 처형을 요청하는 〈청참오적소 請斬五賊疏〉를 이승희(李承熙)· 곽종석(郭鍾錫)과 함께 올렸다. 1907년 대구에서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나 전국에 파급될 때 칠곡지방의 국채보상회 회장으로 추대되어 활동하였다. 3·1운동이 일어나자 곽종석· 김창숙(金昌淑) 등과 협의하여 파리평화회의에 제출할 독립청원서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