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진 전란(壬辰戰亂) 후 여러 장군의 공적을 논함-이항복(李恒福) 우리 동방(東方)에는 문헌(文獻)이 부족하여 아무리 큰 사업(事業)이나 큰 시비(是非)가 있었더라도 몇 년만 지나고 나면 깜깜하게 전하지 않아서 고증할 데가 없게 되므로, 내가 일찍이 이것을 한스럽게 여겼다. 임진년의 변란 때에 내가 어가(御駕)를 호종(扈從)하여 평양(平襄)에 이르러서 병조 판서(兵曹判書)에 초배(超拜)된 이후 7년 동안 중외(中外)를 드나들면서 항상 중병(中兵)을 주관하였으므로, 제장(諸將)의 공죄(功罪)와 시위(施爲)와 사공(事功)에 대해서 대략 이미 알고 있었다. 그 후 사명(使命)을 받들고 남번(南藩)에 나가서 기억나는 것과 들은 것을 참작하여 공론(公論)에 질정해 본 결과 더욱 그 사실이 밝게 드러났으나,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