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재 이제현 화상 2

일본천리대소장 익재 이제현 선생 진영

↑일본 천리대소장 익재 이제현『1287년(충렬왕 14)∼1367년(공민왕 16)』 선생 진영 ↑일본 천리대학 소장 「조반 부인상(趙胖夫人像,?~1433)」/ 경주인 20世 직장 이양오(李養吾)의 딸 고려 및 조선시대에는 여인 화상은 그려지지 않아 오늘날 전해지는 것이 귀합니다. 왕후의 화상도 전해지는 것이 없습니다. 위 두 분의 화상을 비롯하여 우리나라 국보급 인물 화첩은 왜정시대 일본이 모두 강탈해 가서 국내에 전해지는 화상의 대부분은 원본을 그대로 옮겨 그린 이모본(移模本) 들입니다. 조선 개국공신 2등인 배 천인(白川人) 복흥군(復興君) 조반[趙胖,1341년(충혜왕 복위 2)∼1401년(태종 1)]의 배위(配位)로 아버지는 사온서 직장(司醞署 直長) 휘 양오(諱 養吾)의 딸입니다.부인(婦人)은 남편..

익재 이제현 선생 화상(국보 제110호)

↑국보 익재 이제현 화상(국보 제110호) 고려 후기 문신이요, 학자인 익재 이제현(益齋 李齊賢) 선생의[1287년(충렬왕 13) - 1367년(공민왕 16)]초상화이다. 이제현은 원나라의 만권당에서 조맹부趙孟頫, 1254년-1322년) 등과 교류하며 고려에 신 학문과 사상을 소개하고, 성리학을 전파,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호는 익재(益齋), 또는 역옹(櫟翁)으로, 『국사』, 『역옹패설』 등을 남겼다. 가로 93cm X 세로 177.3cm 크기의 의자에 앉은 모습을 비단에 채색하여 그렸는데 그림 위쪽에는 원나라 문장가인 탕병룡이 쓴 찬(贊)과 잃어버린줄 알았던 이 그림을 33년 만에 다시 보고 감회를 적은 익재의 글이 있다. 대부분의 초상화가 오른쪽을 바라보는데 비해 이 영정은 왼쪽을 바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