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항복 4

北靑老德書院賜額祭文 - 金昌協 撰

■ 북청(北靑)에 있는 문충공(文忠公) 이항복(李恒福)의 사우(祠宇)에 대한 사액제문(賜額祭文) (충정공(忠貞公) 정홍익(鄭弘翼)과 충정공(忠貞公) 김덕함(金德諴)을 함께 배향하였다). 지은이> 김창협(金昌協) 예로부터 호걸은 / 惟古豪傑 몇 대 만에 나오는데 / 間世乃生 공업(功業)과 절의는 / 勳業節義 각기 길이 다르다네. / 亦各殊程 누가 둘을 겸비했나 / 孰克兼之 오직 우리 경이거니 / 其惟我卿 출사한 처음부터 / 爰初發跡 명성이 뛰어났네 / 已負儁聲 성스러운 선왕께서 인정(仁政)을 베푸시어 / 聖神在宥 걸출한 인재들이 무리 지어 진출하니 / 髦彦彙征 비유하면 가을날 맑디맑은 밤하늘에 / 譬彼秋旻 수많은 뭇별들이 총총히 뜬 듯했네 / 衆星縱橫 우리 경은 그중에서 / 卿在其間 장경처럼 빛났으니 / ..

북천일록(北遷日錄)-정충신(鄭忠臣) 著

1935년(소화 10) 간행본 ↑백사선생의 친필서문 백사 이항복이 광해군의 인목대비 폐모사건을 반대하여 북청으로 귀양갈 때 정충신이 수행한 일기. 백사가 배소에서 죽어 유해를 모셔 안장할 때까지(1617-1618)의 내력을 적었다. 白沙 李恒福의 北遷日錄. 崇禎紀元後四十二年丙寅 南九萬 書. 丙子 金敎昇, 鄭煥容. 丁丑 後孫 達榮 跋. 李恒福 書蹟. 上下內向難花紋魚尾. [인쇄판식] : 목판본(木板本)[출판년도/판차] : 丁丑(1697년)[크기] : 가로 205mm x 세로 300mm ------------------------------------------------------------------------------------------------------------------------------..

이항복(李恒福)과 포천

■ 이향복과 포천 글 .사진/김경식 바람 맵찬 겨울날 서울의 북쪽 포천으로 향하는 길에서 만난 나무들은 오히려 자신의 옷을 벗고 생존을 준비하고 있다. 봄날 피어났던 나뭇잎과 여름에 무성하던 숲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자식 같던 열매들과 이별한 나무들이 그 해쓱한 얼굴로 살랑거리며 겨울옷으로 무장한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지 않은가. 계곡에서 들려오던 낭랑한 여울물 소리 들리지 않지만, 나뭇가지 우듬지 사이로 푸르른 하늘이 올려다 보인다. 한 겨울 나무들은 자신의 옷을 벗어 언 대지를 덮고 있다. 하늘과 햇살을 분배하면서 행복을 나누려는 겨울나무는 절망을 희망으로 불행을 행복으로 향하는 생명나무이다. 이 땅을 살다가 떠나간 조상들 삶의 사연들이 눈발이 되어 흩뿌려 주길 기대하면서 길을 떠난다. 의정부를 지나..

이항복과 이원익

■ 조선의 청백리로부터 치세를 배우다. - 이항복과 이원익 예나 지금이나 위정자들의 곧고 바른 치세가 나라를 강성하게 만들고 국민을 태평하게 하는 것은 변함없는 진리고 이치다. 지금도 유용하게 쓰이는 청백리라는 말은 과거 특별히 국가에 의해 선발된 깨끗하고 유능한 관리를 뜻한다. 정확히 말하면 청백리는 작고한 사람들에 대한 호칭이다. 살아있는 사람들에게는 염근리라는 호칭이 붙여졌다. 청백리나 염근리로 선발되면 당사자는 진급이나 보직에 특전을 받았고, 후손들에게도 벼슬을 주는 등 많은 혜택이 있었다. 문치를 바탕으로 관료제가 통치제도의 핵심이었던 조선시대에는 모두 217명의 청백리가 배출되었다.조선의 대표적인 청백리였던 이항복과 이원익을 통해 오늘날, 청백리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백사집(白沙集) ↑오리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