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다섯살 계비가 왕실 ‘불행의 씨앗’ 될 줄이야. 이덕일의 事思史: 조선 왕을 말하다, 제150호 | 20100124 입력 왕조국가나 대통령제 국가의 큰 문제는 외척이나 측근의 발호 가능성이었다. 영조는 말로는 외척의 전횡을 비판했으나 행동으로는 이들을 정국의 중심으로 끌어들였다. 또 말로는 탕평책을 주창했지만 행동으로는 소론을 대거 쫓아내 탕평책을 붕괴시켰다. 말과 행동이 달랐던 영조의 이중적 정치 행보는 고스란히 국가적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절반의 성공 영조 ⑨두 외척의 대립 ▲홍봉한 초상 사도세자 제거에 앞장섰던 혜경궁의 부친 홍봉한은 세자 사후에 동정론으로 돌아서서 노론 벽파의 비판을 받았 다. 소론의 정견을 갖고 있던 사도세자가 살해되고 소론 영수 조재호(趙載浩)가 그를 보호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