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원 5

이유원(李裕元) - 백사공파

■ 이유원(李裕元) [생몰년] 1814년(순조 14) ∼ 1888년(고종 25). [문 과] 헌종(憲宗) 7년(1841) 신축(辛丑) 정시(庭試) 병과(丙科) 14위 [생원진사시] 헌종(憲宗) 3년(1837) 정유(丁酉) 식년시(式年試) 3등(三等) 49위 ------------------------------------------------------------------------------------------------------------------------------------- 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字)는 경춘(京春), 호(號)는 귤산(橘山)·묵농(默農). 이조판서(吏曹判書) 계조(啓朝)의 아들이다. 1841년(헌종 7) 정시문과에 급제, 예문관검열(禮文館 檢閱)· ..

귤산 이유원 묘(橘山 李裕元 墓)

↑35世 귤산 이유원 묘(橘山 李裕元 墓)/원거리 모습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송천리 산96-4번지 정경부인(貞敬夫人)동래 정씨와 합장묘이다. ↑위의 산소가 귤산 공의 조부(祖父)인 32世 효정공(孝貞公) 이석규(李錫奎 : 이조판서) 묘이고 아래의 묘가 영의정 귤산 유원 선생 묘이다. 이유원(李裕元)은 조선 말기 때인 1814(순조 14)∼1888(고종 25)의 문신으로 자는 경춘(京春), 호(號)는 귤산(橘山) 또는 묵농(默農)이다. 백사 이항복(白沙 李恒福)의 9세손으로, 이조판서(吏曹判書) 계조(啓朝)의 아들이다. 1841년(헌종 7) 정시문과에 급제, 예문관검열·규장각대교를 거쳐 1845년 동지사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와 의주부윤·함경도관찰사를 지냈다. 고종 초에 좌의정에까지 올랐으나 흥선대..

이유원(李裕元)

■ 요약 1814년(순조 14)∼1888(고종 25). 조선의 문신. 자는 경춘(景春), 호(號)는 귤산(橘山). 묵농(墨農), 시호는 충문(忠文)으로, 백사(白沙), 이항복의 9세손이며, 이조 판서 계조(啓朝)의 아들이다. 1841년(헌종 7) 庭試文科(정시문과)에 丙科(병과)로 급제 하고, 여려 벼슬을 거쳐 1845년 冬至使(동지사)의 書狀官(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와 義州 府尹(의주부윤)·함경도 관찰사를 역임했다. 安東 金氏(안동김씨)의 世道(세도)를 배경으로 고종 초 좌의정에 이르렀으나 大院君(대원군)이 집권하자 그와 반목, 1865년(고종 2) 水原 留守(수원유수)로 좌천되었다가 이해 領中樞府事(영중추부사)로 전임되어 「大典會通(대전회통)」 편찬의 摠裁官(총재관)이 되었다. ■ 본문 조선 후기..

귤산(橘山) 이유원(李裕元)

■ 이유원(李裕元) 34世 상서공파(尙書公派) '남양주 역사기행(12)'- 귤산(橘山) 이유원(李裕元) 글. 윤종일(서일대학 민족문화과 교수) 귤산 이유원[1814(순조 14)∼1888(고종 25)]은 본관 경주(慶州)이고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의 9세손으로 자는 경춘(景春), 호는 귤산(橘山). 묵농(墨農), 이조판서를 지낸 계조(啓朝)의 아들이다. 시호는 충문(忠文)이며 75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한 조선 말기 학자요, 경세가(輕世家)로 헌종(1827-1849)․철종(1831-1863)․고종(1852-1919) 등 3대에 거쳐 국가의 중대사를 총괄하였다. 외숙(外叔)인 박기수(朴綺壽; 1774-1849)를 사사하여 학문적 업적을 쌓았다. 이유원의 관력은 매우 화려하다. 1841년(헌종 7) 정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