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 2

李敬一 先生 간찰

크기 : 가로45㎝ x 세로36㎝ ●이경일(李敬一) 1734(영조 10)∼1820(순조 20).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원회(元會), 호는 청헌(聽軒). 항복(恒福)의 6대손이며, 진사 종열(宗悅)의 아들로, 도사 종악(宗岳)에게 입양되었다. 1768년(영조 44) 음덕으로 관직에 나와 온릉참봉·덕산현감을 지내고, 1775년 문과정시에 을과로 급제, 예조좌랑·사간원정언·홍문관부수찬·대사간·대사성·이조참의·황해도관찰사·이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그뒤 1800년(정조 24) 공조판서에 오른 다음 이어 대사헌·우참찬·형조판서·한성부판윤·좌참찬 등을 지냈다.1804년(순조 4)에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에 올랐다. 우의정으로 있을 때, 성학(聖學)에 힘쓰고 정치기강을 바로잡을 것 등 제반시책..

이경일(李敬一)

■ 32世 이경일(李敬一) [세계] 백사공파(白沙公派) [문과] 영조(英祖) 51년(1775) 을미(乙未) 정시4(庭試) 을과(乙科) 1위 ------------------------------------------------------------------------------------------------------------------------------------- 1734년(영조 10)∼1820년(순조 20).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字)는 원회(元會), 호(號)는 청헌(聽軒). 항복(恒福)의 6대손이며, 진사 종열(宗悅)의 아들로, 도사(都事-從5品) 종악(宗岳)에게 입양되었다. 1768년(영조 44) 음덕으로 관직에 나와 온릉참봉(溫陵參奉-從九品)· 덕산현감(德山縣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