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언이(尹彦頤) 2

윤언이 묘지명 병서(尹彦頤 墓誌銘 幷序)

■ 문강공 윤언이 묘지명 병서 (文康公 尹彦頤 墓誌銘 幷序) 중서시랑평장(中書侍郞平章) 문강공(文康公) 묘지명과 서문조청대부 우산기상시 한림학사 지제고(朝請大夫 右散騎常侍 翰林學士 知制誥)이고 자금어대(紫金魚袋)를 하사받은 김자의(金子儀) 지음 황통(皇統) 8년(1148, 의종 2)에 임금이 바야흐로 덕망이 높은 원로에게 정권을 맡기고자 하여, 12월에 조서(制誥)를 내려 공을 은청광록대부 정당문학 판상서형부사(銀靑光祿大夫 政堂文學 判尙書刑部事)로 삼았다. 내려진 은혜가 두터웠으므로 공은 공손히 절을 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사양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관직에 나가 도를 논하고 음양을 고르게 다스려서, 나라 안으로는 백관을 바로잡고 나라 밖으로는 사이(四夷)를 다스려서 왕도가 다시 행해지니, 만세(..

윤언이(尹彦頤)

■ 윤언이(尹彦頤) [생졸년] : 1090(선종 7)∼1149(의종 3). [진사시] 1114년(예종 9) 진사시 장원 ------------------------------------------------------------------------------------------------------------------------------------ 고려 중기의 문신.본관은 파평(坡平)이며, 호는 금강거사(金剛居士)이다. 문하시중을 지낸 윤관(尹瓘)의 다섯째[막내] 아들이다. 17세에 부음(父蔭)으로 벼슬에 나갔다가, 25세 되는 예종 9년(1114년)에 진사시에 제1등으로 급제하였다. 인종 때 기거랑(起居郎)이 되어 좌사간(左司諫) 정지상(鄭知常)·우정언(右正言) 권적(權適) 등과 정치의 득실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