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해주 2

2016 평화오디세이 - 중앙일보

평화 오디세이 2016 참가자 릴레이 기고 연해주에서 다시 만난 통일의 꿈 [중앙일보] 입력 2016.11.07 00:25 수정 2016.11.07. 00:59 ↑정의화 제19대 국회의장 간도에 민족학교인 서전서숙을 세웠던 이상설 선생은 헤이그 특사 사건 이후 연해주로 들어와 항일투쟁을 계속했다. 안중근 의사가 ‘동의회’ 단원들과 함께 독립의지를 담아 왼손 무명지를 끊었던 곳은 두만강 근처의 크라스키노였다. 이처럼 러시아 연해주는 중국 만주와 더불어 독립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던 곳이다. 그러나 민족의 수난은 끝나지 않았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스탈린 정권은 한인의 강제 이주를 시작한다. 절반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극한의 강제 이주 과정을 이겨낸 이들이 바로 중앙아시아의 고려인이다. 그저 ..

조국의 독립을 향한 혼불

“조국의 독립을 향한 혼불” 연해주! 이땅은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혼을 불태운 곳이었습니다.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는가 하면 의병을 조직해 일제와 격전을 벌였습니다. 또한 신문 간행을 통하여 대외 홍보전을 이끌며 학교와 각종 단체에서 민족 계몽에도 앞장섰습니다. 3.1만세운동도 연해주에 번진 커다란 등불이었습니다. 그들의 혼을 심지삼아 타올랐던 불꽃은 꺼지지 않은 혼불이 되어, 연해주 땅을 밝히고 있습니다. 출처 : 아시아태평양신학문화연구소> ■ 연해주, 만주, 간도의 지명? 두만강 북쪽이 북간도이고, 압록강 북쪽이 서간도이다. 만주는 원래 지명이 아닌 민족이름입니다. 1635년 청나라의 2대 황제 홍타이지(청 태종)는 '여진'이라 불리던 자기민족을 '만주'라고 부르도록 명합니다. 여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