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숙주 3

조선의 천재·기인(天才·奇人)

■ 조선시대 천재·기인(天才·奇人) 1. 아홉 번 과거시험에 모두 장원급제한 한국의 천재 이율곡(李栗谷) [생졸년] 1536(중종 31)∼1584(선조 17). 한국의 역사상 현인의 경지에 근접한 인물을 꼽으라면 관점의 차이는 있겠지만 율곡 이이 선생을 꼽는데 주저하지는 않을 것이다. 율곡 선생은 9번 과거시험(생원시, 진사시, 문과 시)에 모두 장원급제 한 인물이다. 우리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며 또한 예언자적 능력도 뛰어나 임진왜란을 미리 예견 하고 10만 양병 설을 주장했으며 정치, 경제, 국방 등 모든 분야에 식견이 탁월한 정치가요, 사상가이며, 교육학자였고, 철학자였다. 그의 가문은 유명한 신사임당을 어머니로 둔 뿌리 깊은 천재가문의 집안이었으며 한국판 한국정신사의 큰 산맥인 성리학의 대가로, 여..

권력과 인생-이덕일

[이덕일 사랑] 권력과 인생 같은 집현전 학사 출신이었지만 성삼문(成三問), 박팽년(朴彭年) 등의 사육신이 명분을 좇은 반면 정인지(鄭麟趾)와 신숙주(申叔舟)는 현실을 택했다. 현실의 승자는 당대에는 물론 후대까지 많은 비난의 표적이 되었다. 조선 중기 이덕형(李德馨)은 '죽창한화(竹窓閑話)'에서 단종을 죽인 "죄를 논한다면 정인지가 으뜸이 되고 신숙주가 다음이다"라고 비난했다. '해동악부(海東樂府)'는 신숙주가 "59세로 임종할 때 한숨 쉬며, '내 인생도 마침내 여기에서 그치고 마는가'라고 탄식했으니 후회하는 마음이 싹터서 그러하였다 한다"고 전한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후회했다는 것이지만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 해도 그들은 명분보다는 현실, 즉 권력을 택할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러나 현실을 택한 인생..

신숙주선생 묘(申叔舟 先生墓)

↑소재지>경기 의정부시 고산동 산53-7 ↑신숙주선생 영정 ●신숙주(申叔舟)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범옹(泛翁), 호는 희현당(希賢堂) 또는 보한재(保閑齋). 덕린(德麟)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공조참의 포시(包翅)이고, 아버지는 공조참판 장(檣)이며, 어머니는 지성주사(知成州事) 정유(鄭有)의 딸이다. 1438년(세종 20) 사마양시에 합격하여 동시에 생원·진사가 되었다. 이듬해 친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전농시직장(典農寺直長)이 되고, 1441년에는 집현전부수찬을 역임하였다. 1442년 국가에서 일본으로 사신을 보내게 되자 서장관으로 뽑혔다. 《훈민정음》을 창제할 때 참가하여 공적이 많았다. 중국음을 훈민정음인 한글로 표기하기 위하여 왕명으로 성삼문(成三問)과 함께 유배중이던 명나라 한림학사 황찬..